앤디 김(Andy Kim, 김 형일) 목사님에 대해 아는바가 전혀없어서 웹에서 찾아보기로 작정을 하고 헤메던중 좋은 기사를 발견하고 내 홈피로 무조건 퍼왔다.
물론 함집사님께 물어도 되지만 겸손의 극을 달리시는 함집사님이 아무래도 말을 안하실것 같아서 작정하고 헤멘것인데 의외로 커다란 수확을 한것이다.

모쪼록 주님의 크신 사랑하심과 보살피심이 김목사님 가정과 사역위에 늘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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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의 '8번가 교회'를 아십니까 ?

Andy Kim, 한국 이름은 김형일이다. 69년생이니까 이제 막 40대로 접어들었다. 태어난 곳은 한국이지만, 아버지의 유학길을 따라서 세 살 때 독일로 갔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지금까지 살았다. 그래서 우리말이 영 서툴다.

그는 미국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뒤 95년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입학해서 신학을 공부한 다음 목사가 되었다. 30대 중반인 아내 홍정연 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97년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유학 와서 상담학을 공부하다가 김 목사를 만나 98년 결혼했다. 자녀들은 숙영(9), 찬영(8), 은경(6), 이렇게 삼 남매다.

김 목사는 고신대, 총신대, 합신대에서 한국교회사를 가르치다가 은퇴한 아버지 김영재 목사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책 속에 파묻혀 살았던 학자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도시 선교를 공부했다. 애초 입학할 때부터 그쪽으로 사역의 방향을 정했다. 그의 지도 교수인 매뉴엘 오르티즈 Manuel Ortiz 목사는 필라델피아 빈민 지역에서 목회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탁월하게 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오르티즈 목사를 통해 신학적으로 배웠고, 졸업한 다음에는 그가 목회하는 Spirit and Truth Fellowship Church에서 7년 정도 사역을 하면서 목회적으로 훈련을 쌓았다.

   
 
  ▲ 여름 캠프는 중고등학생들의 기초 실력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이 일을 위해 한인 교회 청년들이 교사로 자원봉사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다섯 식구 한 가족, 가난하고 범죄 많은 흑인 동네로 이사하다

김 목사 가족은 2000년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필라델피아 북쪽 헌팅파크 Hunting Park 지역에 이사해서 본격적으로 사역했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1년간 교회 개척을 위한 준비 기도 모임을 한 뒤 2007년 추수감사절 때 지금 사는 동네에서 Spirit and Truth Fellowship Church의 지교회를 개척했다. 두 교회 다 헌팅파크 근처에 있다.

교회 이름은 8th Street Community Church. 우리말로는 '8번가 교회'라고 부르면 적절할까. 7번가도 아니고, 9번가도 아니다. 온누리도 아니고, 지구촌도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확 다가온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사역의 대상으로 삼고 거기에만 집중하려는 의도가 이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형 버스를 동원해서라도 저 먼 동네에 사는 사람들까지 끌어모으는 한국 교회의 모습과는 정반대라고 보면 될 듯싶다.

김 목사 가족의 집과 교회는 6개 블록쯤 떨어져 있다. 이 동네는 필라델피아에서도 가난하고 범죄 많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김 목사 가족이 사는 집은 헌팅파크의 북쪽에 있는데, 여기는 히스패닉이 많고 흑인들은 조금 있다. 반대로 교회가 있는 남쪽은 흑인들이 대부분이고, 상대적으로 더 가난한 동네다.

개척을 위한 준비 기도 모임을 하는 1년 새에 작은 집을 하나 사서 예배 공간으로 바꿨다. 교인은 30명 정도 되는데, 흑인이 25명,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히스패닉 5명, 한국인은 김 목사 가족 5명이다.

   
 
  ▲ 김형일, 홍정연 부부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만나 동역하고 있다. 상담학을 전공한 홍 씨는 주로 교도소에 수감된 남편을 두고 있는 아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가난한 사람들 위한 기독교 사립학교 세우는 것이 꿈

헌팅파크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세워진 이 교회의 사역 내용을 잠깐 들여다보자.

가장 중요한 청소년 사역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3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열리는 방과 후 학교다.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곧장 교회로 오면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부족한 과목을 일대일로 보충해준다. 여름에는 여름 캠프를 연다. 미국의 여름 캠프는 종류가 다양하지만, 이 교회는 아이들의 기초 실력을 탄탄하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평소에 진행되는 방과 후 학교는 초등학생들도 참여하지만, 여름 캠프는 중고등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아이들이 너무 많으면 일대일 집중 지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인 교회 대학생들이 와서 교사 역할을 해준다. 공부를 가르치는 데는 누구도 한국 대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다. 한국 학생들은 중고등학생 때부터 운동, 여행, 음악 같은 여름 캠프보다는 대개 영어와 수학을 집중적으로 배우는 여름 캠프를 다닌다. 부모들이야 오직 자식의 성공만을 위해서 공부를 시킨 셈인데, 여기에 훈련된 아이들이 빈민 지역 아이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다음 학년 때 배울 내용들을 여름방학 때 집중적으로 예습한 다음 학교를 다니니까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게 된다.

내가 처음 뉴욕에 와서 1년 조금 넘게 다녔던 New Song Community Church는 맨해튼 할렘에 있는 작은 교회인데,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매우 비중 있게 여겼다. 10년 넘게 꾸준히 진행한 결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 중에 대학을 간 아이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빈민 지역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뿌리 깊은 취약점은 역시 교육 문제일 것이다. 마약 거래와 알코올 중독과 각종 범죄와 사고로 얼룩진 검은 도시를 밝게 만들려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그 핵심이 교육이라고 이들은 믿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헌팅파크 동네에서는 고등학교는커녕 중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하게 해주는 것이 1차 목표다. 할 수만 있으면 대학교까지 진학하고, 더 나아가 직업까지 구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가깝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지금은 다만 현재 주어진 여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럼에도 김 목사 가족의 꿈은 더 커 보인다.

"공립학교 질이 너무 안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할 정도예요. 그렇게 공부해서 어떻게 대학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희 꿈은 기독교 사립학교를 만드는 겁니다. 도시 빈민 사역을 하는 분들은 기독교 학교를 만듭니다. 저희도 저렴한 학비로 다닐 수 있고, 식사도 무료로 제공해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질이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방과 후 학교가 끝난 오후 6시 이후의 프로그램은 매일 달라진다. 월요일에는 아이들에게 영어와 공작을 가르친다. 화요일에는 마약, 알코올 중독자 상담 모임을 한다. 수요일에는 교인 전체 성경 공부를 하고, 목요일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따로 모인다. 금요일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같은 동네에 있는 교회 교인들이 한데 모여 기도회를 갖는다. 어느 예배당 안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블록의 사거리에 모여 서서 동네를 위해서 기도한다. 토요일에는 청소년 댄스팀이 모여서 연습을 한다. 2~3명의 평신도들이 동역하고 있는데, 사역자 모임도 토요일 갖는다.

어른 사역은 교도소에 들어간 아빠, 형제, 자녀가 있는 집에서 남은 가족들을 상담하고, 위로하고, 법률적인 지원이 필요하면 그 일을 도와주는 일을 말한다. 상담학을 전공한 아내 홍정연 씨는 주로 홀로 남은 아내들이 쏟아내는 아픔과 눈물을 받아주는 역할을 한다.

"흑인들은 감정이 풍부하잖아요. 한국 사람들이랑 정서가 비슷해요. 그래서 상담하기가 좋은 편이죠. 때로는 살아가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하지만, 속 시원히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곁에 생겼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기뻐서 울기도 해요."

최근에는 마약 중독자와 알코올 중독자 모임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중독은 대개 남자들이 독차지하기 마련이므로 상담도 남자인 김 목사 몫이다.

"이 사람들도 마약이나 알코올에 찌들어 사는 삶을 행복하게 여기는 건 아닙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 삼촌, 형, 친구가 싸움하거나 마약 거래하다가 잡혀서 감옥 가는 것을 늘 보면서 살아왔으니 그게 아주 익숙하고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나쁜 건 알지만 그걸 거부할 힘이 없는 셈이지요.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사람이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건 알더라도 그걸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그걸 하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당신은 더 이상 마약에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술에 의존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는 예수님만 의지하면 됩니다' 하고 얘기하면, 술과 마약을 끊겠다고 결심하지만 일주일도 안 되어서 과거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 흑인들과 히스패닉들만 사는 동네에서 태어난 세 아이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를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 자녀들,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자기 정체성 확실


흑인들과 히스패닉만 사는 동네에 한국 사람이 이사를 오고 몇 년 뒤 교회를 세웠다. 동네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가질까.

"처음에는 얼마 가지 못할 거라고 의심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약간은 이질감을 보였어요. 한 가족처럼 받아주지 않았던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이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동양 사람이라 해봐야 장사하는 중국 사람이 전부거든요. 다른 곳에 살면서 장사만 여기 와서 하니까, 인간관계가 전혀 없다고 봐야죠. 얘기를 친절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동양 사람들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희가 9년째 여기 살면서 사역하고 있잖아요. 자기 아이들이 학교 끝나면 방과 후 학교에서 공부하죠, 여름에는 캠프에 참여하죠. 우리가 자기네 아이들을 잘 돌봐주기 때문에 부모들 태도가 점점 호의적으로 바뀌는 걸 확인할 수 있어요. 여름 캠프 때 와서 둘러보기도 하고, 아이들 점심 준비를 도와주는 엄마들도 있어요. 이제는 거부감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조심조심 천천히 하고 있어요."

더 이상 얼굴색 다른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해도, 이렇게 험한 동네에 한 가족이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자 혼자라면 모를까, 아내와 아이들이 힘들어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들 표정에서는 그런 게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로서 자녀 문제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세 아이는 모두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럼 그렇지. 자신은 빈민 사역을 하면서 자식은 해외 유학 보내고 좋은 학교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 아닌가. 자기 자신은 몰라도 자식 문제에서 자유로울 부모는 거의 없다. 그걸 마냥 비난할 수는 없지만, 찜찜한 구석이 없지는 않다.

이들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니 이번은 경우가 조금 다른 것 같다. 기독교 사립학교는 맞는데 엄청 비싼 학비를 내는 그런 학교는 아니다. 도시 선교를 하는 사람들이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 세운 사립학교는 학비가 쌀 수밖에 없다. 김 목사네 아이들도 저소득층 가정에 속하기 때문에 학비를 조금만 내고 다니고 있다.

자녀 문제에 대해 홍정연 씨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어디에 사느냐, 어떤 학교를 다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가정환경에서 어떻게 자라느냐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가정환경을 만들어주는지 물었다.

"자녀 문제는 고민하기보다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 마구 매달리는 성격은 아닌데, 아이들을 생각하면 간절히 기도하게 돼요. 그리고 집안에서는 잔소리를 안 하고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은 선생님이 야단을 치거나 친구가 화를 낼 때보다 엄마가 잔소리할 때 몇 배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많이 가지려고 해요. 교사들의 태도가 어떤지, 커리큘럼은 괜찮은지 자세히 살피는 편이죠. 그러려면 학교에 자주 가야 하기 때문에 저절로 자원봉사도 많이 하게 돼요. 그런 덕분인지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어요. 감사한 일이죠."

이 동네에서 태어난 세 아이는 한인 사회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문화적 차이를 스스로 느끼고 있단다. 어려서부터 얼굴색이 다른 아이들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자아가 분명하다고 했다. 자신은 코리언-아메리컨이고, 예수님을 믿고 있고, 헌팅파크에 살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고 했다. 자아상이 잘못 형성되는 경우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한인 청소년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아이들은 그 반대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가만 보니 아빠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헤어지기 전에,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것 같으냐, 평생 여기서 이 사역을 할 작정이냐고 물었다. 부부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슬그머니 웃기만 했다. 홍정연 씨가 "글쎄, 아직 다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하며 말을 흐리자, 앤디 김 목사가 "이제 개척해서 시작했는데 벌써 다른 생각하면 어떡합니까?" 하고 어눌한 말투로 우문현답(愚問賢答)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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