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입동이 지나고 겨울이다. 남들 다 가는 단풍구경 한 번 못 가보고 이렇게 가을을 보낼 수는 없어 떠나는 야속한 님 바짓가랑이 붙잡는 심정으로 부랴부랴 여행길에 올랐다.

목적지는 지난 8월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 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문경새재'이다.

아직 단풍이 지지 않은 늦가을의 문경새재 초입.

아직 단풍이 지지 않은 늦가을의 문경새재 초입.

문경새재야 워낙 유명해 다들 이름 한 번쯤 들어 봤을 테지만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위라는 것은 의아할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문경새재에는 국내 최고나 최장 등 타이틀이나 딱히 대표할 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위라는 점에 이유를 꼽자면 남녀노소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는 잘 만들어진 흙길과 함께 조선시대부터 한양을 오가던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새재길 주위를 감싸는 풍경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지난 2010년 조성한 문경자연생태공원의 모습.

지난 2010년 조성한 문경자연생태공원의 모습.

이유야 어쨌든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린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이후 약 500여 년 동안 한양과 영남을 잇는 가장 번듯한 길이었다.

당시 동래에서 한양까지 가는 고개는 추풍령과 문경새재, 죽령이 있었다. 문경새재가 열나흘 길로 가장 빨랐고 추풍령은 보름 길, 죽령은 열여섯 길이 걸렸다고 한다.

하루 이틀 사이였지만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들은 유독 문경새재를 고집했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죽죽 미끄러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문경(聞慶)이라는 지명은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의미가 있어 선비들은 이 길을 더욱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국내 최초 '길'을 주제로 한 옛길박물관의 외경.

국내 최초 '길'을 주제로 한 옛길박물관의 외경.

이처럼 문경새재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가 많은데, 길을 따라 걸으며 차근차근 소개하겠다. 문경새재 도보여행의 시작은 옛길박물관부터 시작된다. 옛길박물관은 지난 2007년 문경새재박물관을 개축해 우리나라 최초 '길'을 주제로 재개관한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연건평 1천150㎡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3개 전시실과 1, 2층 중앙홀, 수장고, 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고, 야외전시장도 조성되어 있다.

옛길박물관 내부 전시 모습.

옛길박물관 내부 전시 모습.

1층 전시관은 먼 길을 떠날 때 들고 다닌 괴나리봇짐, 문경의 역사와 문화유산, 출토복식, 조선의 옛 지도와 10대 도로, 우리나라의 옛길 등을 주제로 꾸며졌다. 2층으로 올라가면 옛길상영관이 있고 그 옆으로 위성으로 보는 문경의 모습 등을 소개한다.

문경새재박물관 당시 하루 평균 관람객 수는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옛길박물관으로 재개관한 후 하루 평균 1362명이 입장한다니 이제는 문경새재의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문경새재의 제1관문 주홀관으로 향하는 길.

문경새재의 제1관문 주홀관으로 향하는 길.

박물관을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새도 날아 넘기 힘들다는 문경새재의 제1관문 주흘관이 나온다.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1708년(숙종 34년)에 완공한 주흘관은 문경새재 3개의 관문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주흘관부터 비포장 흙길이 시작된다. 깎아 넓히고 포장하는 게 미덕인 시대에 고갯길이 아직 비포장으로 남아있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970년대에 국토개발을 진두지휘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덕이라 한다.

70년대 중반에 문경을 순시하던 박 전 대통령이 무너진 성벽 위로 차량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자 차량통행금지와 함께 문경새재길은 포장하지 말라고 지시해 자연 상태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문경새재에서 가장 큰 관문인 제1관문 주홀관의 외경.

문경새재에서 가장 큰 관문인 제1관문 주홀관의 외경.

성문을 들어서면 드라마 '태조 왕건'을 비롯해 여러 사극을 촬영한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이 나온다.

세트장에서 조선시대 풍경을 둘러본 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 조령원터와 주막이 차례로 나온다. 조령원은 옛 관리들을 위한 숙박시설이고 주막은 선비와 보부상들이 국밥 한 그릇에 시장기와 여독을 풀던 곳이다.

제2관문인 조곡관으로 향하는 길 풍경.

제2관문인 조곡관으로 향하는 길 풍경.

새재를 넘던 율곡 이이는 "험한 길 오르다보니 어느덧 석양인데/산 아래 주점 물 긷는 길조차 아득해/(중략)/잠들지 못한 깊은 밤은 참 고요도 한데/싸늘한 달빛만 사립문을 비추네"라고 노래했다.

문경새재길 만큼 시의 주제로 많이 다뤄진 길도 드물다. 김시습 이황 류성룡 정약용 김정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묵객들이 문경새재에서 남긴 시는 수백여편이다.

단체 여행객으로 붐비던 제2관문인 조곡관.

단체 여행객으로 붐비던 제2관문인 조곡관.

팔왕폭포로 유명한 용추와 제2관문인 조곡관을 지나면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진을 쳤던 이진터가 나온다. 신립은 이곳에서 왜적을 급습하자는 부하들의 간언을 물리치고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으나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에 의해 8000명의 의병이 몰사한다.

다산 정약용은 "황선이 적 격파한 일 계책 아주 서툴고/신립의 군사 작전 세상이 모두 의심하였지/애석할사 이제 병법을 어디에다 시험할꼬/지휘소의 명령 소리로 평화시절을 즐긴다오"라는 시를 지어 신립이 조령을 지키지 않았다가 패배한 사실을 애석해했다.

조곡관에서 이진터로 향하는 흙길에 단풍 융단이 깔려 있다.

조곡관에서 이진터로 향하는 흙길에 단풍 융단이 깔려 있다.

이진터를 지나면 완만하던 경사가 가팔라지며,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기존의 넓은 흙길이고, 하나는 실제 옛과거길이다. 어디로 가던 3관문인 조령관까지 이어져 있지만 옛과거길에는 낙동강 발원지와 책바위가 있어서 이 구간만 옛과거길을 이용했다.

흔히 낙동강은 상중에서 시작한다고 알고 있으나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 의하면 "낙동강은 그 근원이 셋인데, 하나는 봉화현 북쪽 태백산 황지(黃地)에서 나오고, 하나는 문경현 북쪽 초점(草岾)에서 나오며, 하나는 순홍 소백산에서 나와서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문경 초점은 문경새재의 옛 지명이다.

낙동강 발원지에서 만난 노부부.

낙동강 발원지에서 만난 노부부.

장원급제의 전설이 전해오는 책바위를 지나 고갯길을 몇 구비 돌면 갑자기 하늘이 열린다. 마패봉과 조령산 사이를 지키는 제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한 것이다. 멀리 조령관 앞에 사람들이 북적거려 다가서니 학생들이 수련회를 왔다.

필자도 처음 문경새재를 찾은 때가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6학년 수련회였는데, 가물가물하던 당시 추억까지 떠올려 주니 문경새재가 인연이구나 싶었다.

제3관문 조령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던 충북 제천 세명고등학교 학생들.

제3관문 조령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던 충북 제천 세명고등학교 학생들.

※ 여행 TIP : 새재 도보여행 후 언 몸을 녹이는 '문경종합온천'

새재 입구에 자리한 문경종합온천은 오렌지빛 온천수가 특징이다. 특히 노천탕은 겨울철 온천욕을 즐기기에 분위기 있다. 맥반석을 이용해 높은 절벽을 만들고 중간마다 폭포수가 흘러내리게 했다. 이 때문에 수증기가 자욱하게 깔려 안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질도 좋다. 다량의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공기와 접촉하면 약간 붉고 탁해 보이지만 미네랄이 풍부한 보양온천이다. (054)571-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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