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덮고 잔뜩 웅크린 채로 아침에 눈을 뜬다. 뺨에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찬걸 보면 이내 또 겨울이 찾아오나 보다. 하늘이 높아지고 말은 살찌는 계절인데 덩달아 사람의 식욕도 왕성해진다. 누군가 늦가을바람을 타고 배고픔이 퍼지도록 하는 마법을 부렸나 보다. 먹어도 마셔도 채울 길 없는 허기로 퇴근길 발걸음은 힘들다. 좋은 사람들과 둘러 앉아 그저 보글보글 끓여 먹을 수 있는 무언가와 소주 한잔이 간절해진다. 뜨겁고 진하게 사무치는 국물 같은 것이 말이다. 부쩍 서늘해진 밤공기 탓이리라.

그래 전골이 먹고 싶다.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앉아 소주 한 병 시켜놓고 전골 국물 한 모금 밀어 넣으면 이내 응어리졌던 속내가 풀어진다. 전골이 수고한 마음을 다독여준다. 행여 빈속에 술 마시면 속 버릴라 걱정하는 엄마처럼 전골은 건져 먹을 것들도 많다. 이내 전골은 우리네 밥이 되고 또 기꺼이 안주가 되어준다. 사람들과 숟가락 따위 섞이는 것이 뭐 대수랴. 은근하게 끓어오르는 전골 국물을 함께 떠먹으며 술 잔 나누는 사이 늦가을 밤이 무르익어간다.

	은하곱창
은하곱창
푸짐하고 고소한 전골에 젊은 발걸음 꾸준한 노포
<은하곱창> 돼지곱창전골
초원의 맹수들은 사냥 후 짐승의 내장을 가장 먼저 먹는다. 내장에는 살코기와는 차원이 다른 진한 맛이 담겨있다. 특히 내장은 국물로 요리했을 때 그 깊은 맛이 배어나온다.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내장을 활용해 뜨끈한 전골 요리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음식이 곱창전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만치 곱창전골 맛보기가 힘들어졌다. 특히 소곱창보다도 돼지곱창전골 집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아마도 내장 특유의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한 손질 작업이 어려워 식당에서 점점 꺼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서울 전농동의 <은하곱창>은 드물게 돼지곱창전골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허름한 외관부터 신문지로 도배한 실내만 봐도 가게 나이가 꽤나 지긋해 보인다. 이곳의 곱창전골(小 2만원)은 오로지 돼지곱창만을 사용해 끓이는데 그 양이 어찌나 푸짐한지 작은 전골냄비 하나면 사내 3~4명 술안주로 거뜬하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노포임에도 인근 대학생 손님들 발길이 꾸준하다. <은하곱창>의 곱창전골에는 돼지곱창 만큼이나 들깨와 쑥갓이 듬뿍 들어가 누린내는 잡고 돼지곱창 특유의 고소함만 남겼다. 특히 진한 전골 국물에 넣어 먹는 당면사리와 마무리 볶음밥(2,000원)까지 먹어야 이곳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은하곱창>에서는 돼지곱창전골 외에도 돼지신전골(小2만원)이 인기인데 수컷 돼지의 그것(?)으로 만든 희귀한 전골이니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은하곱창>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로15길 22, 02)2247-0254




	식객삼천
식객삼천
얼큰한 한우육개장 손만두를 품다
<식객삼천> 한우육개장손만두전골
한국인은 유독 소고기 국물을 좋아한다. 아마도 소고기에서 나오는 특유의 달고 깊은 국물 맛 때문일 것이다. 소고기를 활용한 다양한 국물 요리 중에서 으뜸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육개장이다. 육개장은 흥이 필요한 잔칫상에서 혹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자리에서 늘 우리들의 속을 따뜻하게 채워준 음식이기도 하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한식포차 <식객삼천>에서는 이런 육개장을 전골 형태로 풀어내 인기 몰이 중이다. 이곳에서 파는 한우육개장손만두전골(3만원)은 기존 육개장에 쫄깃한 피가 인상 깊인 직접 빚은 손만두를 넣어 푸짐함을 더했다.
한국 국물요리의 특징 중 하나는 끓이면 끓일수록 맛이 우러나와 깊어진다는 것이다. <식객삼천>의 한우육개장손만두전골도 처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이 달고 깊어진다. 충분히 끓인 국물은 술맛 돋우는데 제격이다. 이곳의 전골은 오로지 한우만으로 육수를 낸다. 전골 요리임을 감안하면 기존의 것들보다 맑고 개운한 맛이 특징이다. <식객삼천>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전골 요리를 선보여 소주파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다. 한우육개장손만두전골과 함께 한우갈비된장전골이 인기인데 국물을 한 수저 맛보다 보면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기도 한다. 전골에는 분명 진한 국물과 함께 사무치는 여운이 존재한다.
<식객삼천> 서울시 이태원로 248 1층, 02)798-3330




	김판순김치찌개
김판순김치찌개
국산 진짜 갈비에 직접 담근 김치 넣고 끓여
<김판순김치찌개> 갈비김치전골
예전부터 ‘갈비 먹으러 가자’는 말이 ‘외식하자’는 말 대신 썼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갈비를 좋아했다. 하지만 갈비로 만든 음식이라고 해봐야 생각나는 것이 고작 구이나 찜이 전부다. 대전 중구 안영동에 위치한 <김판순김치찌개>는 김치찌개에 갈비를 넣어 갈비김치전골(小 1만9000원)을 판매한다. 기존에 먹어왔던 김치찌개와 달리 돼지갈비가 통으로 들어가 기름기 없이 담백하고 진한 고기 국물 맛을 내기 때문에 유독 이곳은 낮 시간임에도 전골과 함께 식탁마다 소주 한 병씩은 꼭 놓여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김판순김치찌개>에 사용하는 갈비는 국내산 진짜 갈비다. 이를 통으로 작업해 사용한다. 갈비 특유의 사각거림과 쫄깃함이 어우러지는 식감 때문에 이것만 찾는 단골 층이 두껍다. 특히 기존의 목살과 삼겹살을 넣어 먹는 김치찌개와 달리 기름기가 적어 부담스럽지 않고 물리지 않는 장점이 있다. 특히 이 집 국물 맛이 진한 이유는 찌개에 사용하는 모든 김치를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담그기 때문이다. 어느 샌가 직접 담근 김치 맛보기가 힘들어진 요즘 엄마표 김치와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제대로 된 찌개국물 한 숟가락 맛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지 않을까?
<김판순김치찌개> 대전시 중구 안영로 45, 042)586-5252




	교화막국수
교화막국수
잔잔히 사무치는 담백한 닭국물의 매력
<교화막국수> 닭한마리만두전골
다른 고기는 몰라도 닭의 경우는 한 마리를 온전히 먹어야만 정체 모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늘 제 한 몸 통째로 바치는 닭의 희생은 전골에서도 빛났다.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교화막국수>에서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닭한마리만두전골(2만5000원)을 완성했다. 이 집 전골은 압력솥으로 구수하게 고아낸 닭 육수에 사골육수까지 더해 담백하고 진한 맛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수삼을 비롯해 각 종 약재를 넣어 진한 향미를 냈다. 특히 맑은 국물 특유의 달고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배추를 듬뿍 넣었는데 얼핏 샤브샤브를 먹는 것 같기도 하다. 진한 국물을 떠먹다 보면 어느 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하는데 얼큰한 맛의 전골과 달리 닭한마리만두전골의 담백한 맛은 또 다른 매력을 자아낸다. 강하진 않지만 부드럽고 천천히 깊은 곳에서부터 사무치는 맛이 난다.
행여 닭 한 마리로 모자랄까 싶어 그랬는지, 닭이 메밀찰밥을 가득 품었고 여기에 왕만두까지 가세했다. 그 양이 넉넉해 장정 세 명이 붙어도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닭한마리만두전골을 제대로 즐기려면 마지막 육수에 칼국수 사리를 넣어 만든 닭칼국수까지 맛봐야 함을 기억하자. 이곳의 닭한마리만두전골은 주문과 동시에 조리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15분 정도 소요된다. 따라서 미리 예약을 해두면 효율적인 식사가 가능하다.
<교화막국수>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장내로 100, 031)441-8332




	매생이도미머리맑은국과 산마생선완자맑은국
매생이도미머리맑은국과 산마생선완자맑은국
시원하고 깔끔한 도미육수 국물은 소주를 부르고
<스시화정> 매생이도미머리맑은국, 산마생선완자맑은국
우리나라의 국물요리만큼이나 일본에선 나베(なべ)라는 이름의 국물요리가 발달했다. 나베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지만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이 주는 인상은 말끔하다. 서울 북창동 <스시화정>의 스시, 사시미 코스에 제공하는 국물요리가 그러하다. 식사만 하러 왔다가 시원한 국물 한술 뜨고선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사람들이 적잖다. 시원한 국물에 소주 한 잔 생각나는 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스시화정>에서 제공하는 나베는 그날그날 다르다. 이는 제철 식재료와 매일같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구매하는 해산물에 기인한다. 늦가을인 11월부터 제철인 매생이와 도미머리를 넣어 끓인 매생이도미머리맑은국이 그 중 하나다. 도미뼈를 우려 만든 다시에 청주 등을 가미한 국물은 비린 맛이 없고 향긋하다. 도미뼈에서 우러난 깊은 감칠맛과 시원함이 소주 한 잔 하기에 아주 적절하다. 간 산마와 생선완자를 넣어 끓인 산마생선완자맑은국도 별미다. 산의 정기를 그대로 흡수한 웰빙 식재료 산마를 갈아 국물에 넣었는데 미끈미끈 묘한 질감이 매력적이다. 탱글탱글한 완자를 씹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스시화정>의 스시의 퀄리티는 훌륭하다. 구성도 좋아 꽤나 배부른 식사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식사 후반부에 제공하는 개운하고 맑은 국물요리에 소주 한 잔 기울인다면 이보다 만족스러운 식사가 또 있을까?
<스시화정>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14길 29, 02)757-7766

기고= 글, 사진 김원빈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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