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란을 아랍인들에게만 보낸 이유

아래 구절에서는 아랍인들에게 꾸란을 보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알라의 축복으로 계시한 성서이거늘 이것을 따르라 그리고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은혜를 받으리라. 그 성서는 우리 이전 두 백성에게만 계시되었으니 우리는 실로 그들이 읽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도다 라고 말하지 아니하도록 함이라.(꾸란6:155-156)
‘이전 두 백성’이란 기독교인과 유대교인들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꾸란의 모든 주석이 일치한다. 영어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꾸란 번역인 무신 칸(Muhsin Khan) 번역본은 본문에 괄호를 삽입하여 ‘이전의 두 백성’은 ‘기독교인과 유대교인들’이라고 명시해 놓고 있다. 그러니까 아랍 사람들이 ‘왜 기독교 유대교인들에게는 경전을 주고 우리에게는 안 주셨느냐’고 불평하니까 이를 해소시켜 주기 위해서 아랍어로 경전을 계시해 주었다는 것이다. 결국 꾸란은 오직 아랍인들을 위한 책이라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꾸란은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확중한다.
꾸란은 신구약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하는 책이라고 한다. 어떤 학자의 사견이 아니라 꾸란 자체가 그렇게 증언한다. 꾸란의 여러 곳에서 그런 증언은 이어진다.
알라는 구약과 신약을 내리셨고 앞서 온 것을 진리로 확증하면서 그대에게 그 책을 계시하노라(꾸란3:3)
이것 이전에 모세의 성서가 안내서로써 그리고 은혜로 있었으며 아랍어로 된 이 성서가 그것을 확증하며 죄인들에게 경고하고 의로운 자들에게는 기쁨의 복음을 전하고 있노라(꾸란46:12) 


▲이슬람의 라마단이 시작됐다. 라마단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코란의 가르침을 받은 기간이라고 믿고 있다. 라마단 기간에는 금식을 하지만 금식이 끝나는 시간에는 폭식으로 이어지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전세계의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임할 수 있도록 간구하는 기도운동을 펼쳐왔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기도운동은 1992년 중동 지역 그리스도인 지도자 모임에서 처음 시작돼 현재 전세계 2천만명 이상이 동참하는 세계적인 기도운동 중 하나로 발전했으며, 그 결과 실제로 많은 무슬림들이 라마단 기간 꿈과 환상 등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다. 


꾸란은 성경의 핵심을 부정한다.
꾸란이 신구약 성경을 확증하는 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성경의 핵심을 부인하고 있다. 만일 꾸란이 정말 신구약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하는 책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알라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꾸란4:157)
꾸란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부인한다(꾸란4:157).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고 함으로 부활도 부인한다(꾸란4:158). 예수의 신성도 부인한다(꾸란5:116).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도 부인한다(꾸란19:88-91). 그리고 삼위일체도 부인한다(꾸란5:73). 예수를 알라의 선지자라고 하고(꾸란19:30), 예수는 무함마드가 올 것을 미리 알려주기 위해서 왔다고 주장한다(꾸란61:6). 성경의 핵심 사상을 모두 부인하면서 꾸란이 신구약 성경을 진리로 확증하는 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꾸란의 자체 모순이다.   
이에 대해 무슬림 학자들은 꾸란이 말하는 신구약 성경은 변질되기 이전의 진짜 신구약 성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변질된 이후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에 무함마드에 대한 예언이 많이 있었는데 모두 지워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 누가 변질시켰는지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변질되지 않았다는 증거는 너무 많다. 주전 2세기에서 주후1세기 까지 기록된 것으로 증명된 성경의 쿰란 사본과 사해 사본을 판독해 보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변질되지 않았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과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7세기에 갑자기 무함마드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처음에는 신구약 성경이 진리라고 말하다가, 상황이 바뀌자 돌변하여 그 성경이 변질되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란에서 성경과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 인물들을 무슬림 선지자로 만들어 놓고 그들의 말을 통해서 이슬람의 영향력을 키워보려는 얄팍한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꾸란에 나오는 성경 인물들은 이름만 도용했지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인물들이다. 성경과 꾸란을 비교해보면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맺음말
결론적으로 꾸란은 성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그것도 온 인류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아니라 아랍인들에게만 주어진 메시지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꾸란은 아랍어로만 읽어야 하며 번역도 하지 말라고 한다. 아랍어가 모국어인 아랍인에게는 꾸란 번역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랍인도 아니고 아랍어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꾸란을 인류를 위한 경전으로 생각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다면 속히 깨닫고 돌이킬 수 있기를 바란다. 꾸란은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지도 않는다. 무함마드의 입장 변화에 따라 계시를 빙자하여 수시로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모순의 책이다. 그래서 메카 계시와 메디나 계시는 내용과 입장이 전혀 다르다. 
순진한 한국인들이 무슬림 학자들의 타끼야(거짓말해도 좋다는 교리)에 속아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이 이슬람과 그 경전 꾸란의 모순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눈을 떠서 참 진리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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