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변해도 그곳에 가면 그 맛이 있다. 각 지역 지자체가 으뜸으로 꼽는 맛의 현장을 찾아가는 '그곳의 맛' 시리즈를 시작한다. 전국의 맛은 지역 경제를 살리고 고향의 추억을 이어가는 소중한 자산이다.
첫 회로 요즘 한창 속살이 터질 듯이 차올라 있다는 대게의 고장, 영덕으로 가본다.


◇제철 맞은 대게, 강구항엔 식당 170곳

동해안은 지금 대게가 제철이다. 경북 영덕군 강구항 입구에 들어서면 향긋한 대게 냄새가 저 멀리서부터 코끝으로 달려든다.

찜을 쪄 속살을 먹고 나면 게딱지비빔밥이 기다린다.
대게는 3~4월이 제철이다. 산란기가 지나 살이 꽉 차 있다. 찜을 쪄 속살을 먹고 나면 게딱지비빔밥이 기다린다. 뜨끈뜨끈한 밥에 쌉싸름한 내장을 비벼 넣고 참기름과 김 가루를 섞어준다. 끝으로 참깨를 한꼬집 솔솔 뿌려주는 걸 잊지 말자. /영덕군

지난 12일 오후 강구항에는 하루 전 출항했던 대게잡이 배들이 속속 들어왔다.
이제부터 '게판'이 벌어진다.
대게 경매의 시작이다.
항구 주변 대게 식당의 상인 200여 명이 모여들었다. 검붉은 다리가 쭉쭉 뻗은 게들이 등장했다.
상인 수백명의 눈길이 일제히 쏠린다. 대게 중의 대게, 박달대게다. 살이 꽉 차 박달나무처럼 야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갑자기 한쪽에서 탄식이 들렸다.
 "어휴! 저거 하나에 2만원인데…." 누군가 실수로 대게를 집어들다 다리 10개 중 1개가 떨어져나가자 안타까워 지른 소리였다. 다리가 하나라도 떨어지면 대게 값은 급전직하한다. 반값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경매를 거친 대게는 항구의 식당으로 옮겨진다.
강구항에는 대게 전문식당 170곳이 있다.
대게는 수컷보다는 암컷이, 다리보다는 몸통이 맛있다.
그러나 암컷은 포획이 연중 금지돼 있어 먹어볼 수 없다. 식당에서 파는 대게는 모두 수컷이다.
작은 대게를 여럿 넣고 야채와 함께 끓인 대게 해물탕은 담백하고 시원하다.

대게 속살을 먹고 게장이 남은 몸통에 참기름과 당근, 김 등으로 볶은 밥을 비벼 먹는 대게볶음밥은 필수 메뉴.
다리 살을 고스란히 빼낸 대게회는 비린 맛이 전혀 없고 달착지근하면서 쫄깃하다.
강구항에서 대게식당을 운영하는 신말순(59)씨는 "노련한 기술과 정성이 요구되는 것이 대게회 작업"이라며 시범을 보여줬다.
우선 대게를 냉각수로 씻고 다리에 든 속살을 끄집어내야 한다.
얼음이 가득한 물에 게 다리 살을 넣고 10분쯤 지나자 대게 살이 도들도들 눈꽃이 핀 듯 뽀얗게 피어올랐다. 군침이 절로 돈다.


◇고려 태조 왕건도 대게의 '왕팬'

지난해 제20회 영덕대게축제에서‘대게 빨리 실어나르기’경연에 나선 참가자들이 수레를 밀며 달리는 모습.
지난해 제20회 영덕대게축제에서‘대게 빨리 실어나르기’경연에 나선 참가자들이 수레를 밀며 달리는 모습. /영덕군

영덕대게의 맛은 고려 태조 왕건도 사로잡았다.
서기 930년 태조 왕건이 안동 하회마을 부근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이때 안동 유지들과 토호 세력인 영해 박씨들이 전투를 도왔다. 왕건은 보답으로 경주로 가는 길에 영해와 영덕을 들렀다.

지금의 강구항에서 북쪽으로 10㎞ 떨어진 영덕읍 축산면 차유마을에 들른 왕건은 접대 자리에서 처음으로 대게를 맛봤다. 그야말로 한번에 반했다고 한다.
고려 말 학자 권근(1352∼1409)이 쓴 '양촌집'에 나오는 얘기다.


맛을 인정받은 영덕대게는 조선 초에도 임금에게 진상품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수라상에 오르는 데에 번번이 실패했다. 먹는 방법이 문제였다.
대게 다리를 뜯는 임금의 모습이 체통을 떨어뜨린다고 쑤군대는 이들이 많았다.

대게는 이 같은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맛으로 임금을 사로잡은 것이다.
영덕군이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대게 맛이 그리워진 임금이 어느 날 신하에게 "당장 대게를 찾아오라"고 했다. 명을 받은 신하가 다다른 곳이 지금의 영덕군 축산면 죽도(竹島)였다.

체통 때문에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던 그 맛은 지금도 여전하다. 2011년엔 G20 정상회의 만찬 식탁에도 올랐다.



◇22∼25일 제21회 영덕대게 축제

오는 22일~25일 영덕 강구항 해파랑 공원에서 제21회 영덕대게 축제가 열린다.
올해 축제에선 궁중 대게음식을 테마로 꾸민 대게음식 문화관과 영덕대게의 유래와 대게인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관이 차려진다.
대게 라면과 대게 국수, 대게 빵, 대게 떡을 싼값에 맛볼 수 있다.
축제장 주변 해안 64㎞에 펼쳐진 바다 풍광을 따라 걷는 영덕블루로드와 해맞이공원, 대게 원조마을, 항일 의병장 신돌석 장군 생가 괴시리 전통마을 등이 볼거리다.


최근 영덕의 접근성이 더 좋아졌다. 작년 말 당진∼영덕 고속도로가 개통된 데 이어 지난 1월 포항∼영덕을 운행하는 동해선 철도도 뚫렸다. 동해선을 타고 44.1㎞를 달리면 포항에서 영덕까지 34분 걸린다.
서울에서 KTX와 동해선을 타면 3시간 만에 영덕에 닿을 수 있다. 이희진 영덕군수는"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는 축제로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대게·홍게 구별하려면


대게와 홍게 비교

           
대게는 큰 게라는 뜻이 아니다. 다리가 대나무처럼 쭉 뻗었다고 해서 대게다.
영덕 사람들은 "대게의 맛은 크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잡은 지 얼마나 됐는지, 살이 얼마나 찼는지가 맛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큰 대게라도 수족관에 오래 두면 살이 빠진다.
몸집만 크고 먹을 게 없는 일명 '물게'가 돼버린다.


대게와 혼동하기 쉬운 것이 홍게로 불리는 붉은대게다.
둘 다 증기로 찌면 붉은색을 띠어 혼동하기 쉽다. 구별하려면 가시를 찾으면 된다.

홍게는 게딱지 좌우 양쪽에 작은 가시가 있으나 대게는 가시가 없다. 껍데기를 확인해 보면 홍게는 단단하지만 대게는 부드럽다고 한다.
21년째 대게잡이를 하고 있는 선장 이재복(47)씨는 "대게는 몸통 부분은 주황색, 배 부분은 연한 노란색"이라고 말했다.


대게와 홍게 사이에서 태어난 청게도 있다.
등 쪽이 연한 주홍색이다.
대게같이 생겼으나 대게는 아니라는 뜻을 강조해 '너도대게'라고도 한다.

박달대게를 대게의 한 종류로 오해하기도 한다. 국내산이건 수입이건 속살이 꽉 찬 대게를 박달대게라고 부른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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