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통령이 2년 내 흡수통일을 자신한 이유
- 2016년 4월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후 10월까지 6개월간 태영호 포함 11명의 핵심 계층 도미노 망명

중국 浙江성 寧波에 있는 북한 류경식당에서 일하던 지배인 허강일씨와 여종업원 12명이 2016년 4월 7일 한국에 들어온 직후 6개월간 한 달에 한 명꼴로 북한 엘리트층의 脫北 행렬이 도미노처럼 이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월간조선》이 국정원 슈퍼컴퓨터의 ‘메인 서버’에서 잠자는 ‘고위층 탈북현황’ 비밀 문건을 입수, 분석한 결과다. 출신 성분 좋은 이들이 ‘류경식당 집단 탈북’ 후 탈북 러시에 가세했다는 소문이 실제 사실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출 직후 ‘평양 옥류관’ 설립자 손녀 탈북
⊙ 김책공대 출신의 북한 컴퓨터 천재, “노예처럼 살았다”며 귀순… 北의 IT 기술 파악하는 데 도움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김철성 3등 서기관 가족이 ‘금수저 출신’ 부인의 반대에도 망명한 이유
⊙ 김정은 비자금 담당하는 당 39호실 산하 경흥무역의 2등 서기관 “북한 엘리트 사이에는 김정은을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
⊙ 실패하면 독약 앰풀 먹겠다고 다짐한 뒤 탈출한 駐中 북한 보건대표 일가족
⊙ “따뜻하게 맞아주겠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한마디에 흔들린 다수의 북한 엘리트 그룹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 있는 북한 류경식당에서 일하던 지배인 허강일씨와 여종업원 12명이 2016년 4월 7일 한국에 들어온 직후 6개월간 한 달에 한 명꼴로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脫北) 행렬이 도미노처럼 이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월간조선》이 국정원 슈퍼컴퓨터의 ‘메인 서버’에서 잠자는 ‘고위층 탈북현황’ 비밀 문건을 입수, 분석한 결과다. 출신 성분 좋은 이들이 ‘류경식당 집단 탈북’ 후 탈북 러시에 가세했다는 소문이 실제 사실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건을 보면 류경식당 근무자들의 집단 탈북 직후인 5월에는 캄보디아·중국 북한식당 종업원(3명), 6월에는 중국 파견 북한 IT 요원과 동유럽 국가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3등 서기관 일가족, 7월에는 캄보디아 내 북한식당 여종업원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3등 서기관 일가족, 수학 영재가 탈북했다.
 
2016년 4월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후 10월까지 6개월간 태영호 포함 11명의 핵심 계층이 도미노 망명한 것으로 《월간조선》이 입수한 국정원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사진=통일부 제공
  8월에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이후 최고위급 망명 인사로 꼽히는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쿠웨이트 건설근로자, 9월에는 인민대학습당(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 산하 주(駐)러시아 무역지사 부대표와 노동당 과학교육부 소속 간부, 10월에는 노동당 39호실 산하 경흥지도국 공관원(2등 서기관) 가족이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이런 이유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북한 붕괴’ 가능성을 크게 봤다. 2~3년 내 ‘흡수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8월 열린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최근 북한 주요 인사의 탈북과 망명이 이어지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면서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북한 내 엘리트층의 탈북 러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통과(2016년 12월 9일) 직전 끊겼다.
 
 
  2016년 5월, ‘평양 옥류관’ 설립자 손녀 탈북
 
2016년 5월 탈북한 캄보디아 북한식당 여종업원 A씨는 본인이 ‘평양 옥류관’ 설립자 손녀라고 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인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는 모습이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캄보디아 북한식당 여종업원 A씨는 2016년 5월 6일 식당을 이탈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우리의 국정원)는 A씨를 추적했다. 자력 탈출이 어려워진 김씨는 국정원에 귀순 지원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안전하게 김씨를 탈출시켰다. A씨는 자신을 평양 옥류관 설립자의 손녀라고 주장했다. 옥류관은 북한 주민과 외국 관광객 등이 주로 찾는 음식점으로 1960년 평양 중구역 승리거리에 2층 규모로 설립됐다. 지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갔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도 이용했었다. 2018년 4월 27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 때는 옥류관 냉면이 만찬 테이블에 올랐다.
 
  북한은 옥류관 전용 제면기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 가져다 놓고 회담 당일 옥류관의 수석요리사가 통일각에서 면(麵)을 뽑았다. 옥류관 냉면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만찬장인 평화의 집 3층으로 배달됐다. A씨는 국정원 ‘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일반 탈북민과 분리되어 조사를 받았다.
 
  참고로 캄보디아는 북한의 우방국이다. 캄보디아는 1950년대 외교적 고립 상태에 빠져 있던 북한이 제3세계 국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왔다.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겠다는 캄보디아의 원칙이 북한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캄보디아 시아누크 국왕과 북한 김일성 사이는 아주 특별한 형님·동생으로 발전했다. 시아누크 국왕은 1965년부터 해마다 북한을 방문했고 그가 쿠데타로 자리에서 물러나 있을 때나 권좌에 있을 때나 상관없이 김일성은 그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쿠데타로 실각했던 시아누크가 다시 왕권을 잡자 김일성은 평양시민 군중대회를 열어 경축했고, 경호원까지 보내 그의 신변을 보호했다. 시아누크 역시 보답하기 위해 직접 만든 노래를 김일성 생일 축하곡으로 바칠 정도로 양국 관계는 우호를 넘어 애틋하기까지 했다.
 
  두 나라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캄보디아에서는 북한의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앙코르 유적지 옆에 문을 연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이다. 북한 당국이 공사비 1000만 달러 전액을 출자하고 북한의 만수대 창작사가 건립했다.
 
  단순히 건물만 올린 것이 아니라 기획과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북한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었다. 박물관에 대한 10년 운영권을 가지는 북한은 이곳을 주요 외화벌이 창구로 사용한다. 만수대 창작사는 북한 미술 분야 최고의 집단창작 단체로 해외에서 동상이나 기념비, 건축물을 지어주면서 북한 당국에 외화를 벌어다 주고 있다. 캄보디아에는 북한식당이 9개가 있었는데 2016년 2월 이후 한·미의 독자 제재와 유엔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대부분 문을 닫았다.
 
 
  2016년 6월 중국 주재 북한 IT 요원의 귀순
 
김책공대 출신의 북한 컴퓨터 천재는 “노예처럼 살았다”며 귀순 이유를 밝혔다. 사진=조선DB
  북한은 중학생 때부터 IT 요원(사이버 테러) 양성을 시작한다. 그 중심은 북한 전역에 있는 영재 교육기관인 ‘제1중학교’다. 김정일은 1985년 각 시·군 구역 단위마다 제1중학교를 신설했다. 이 중 최고는 ‘평양 제1중학교(우리의 중·고교 통합 과정)’라고 한다. 제1중학교는 소학교(초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데 평양 제1중학교의 경우 항일 투사나 6·25 참전 군 장성 자손, 중앙당과 중앙 부처 고위직 자녀, 평양시 갑부 자녀가 주로 다녀 ‘귀족 학교’로 꼽힌다. 하지만 집안 배경과 상관없이 전국에서 실력으로만 뽑히는 이들이 있는데, 주로 수학·과학 성적 우수자다.
 
  B씨는 후자였다. ‘금수저’는 아니지만, 성적 우수로 김책공대에 진학한 B씨는 졸업 후인 2015년 중국 베이징 소재 ‘조선○○○ 기술회사’에 파견됐다. 그의 임무는 애플의 아이폰용 앱 개발이었다. 그는 노예처럼 일했다. 예닐곱 명의 동료와 함께 잠자는 4시간을 제외하고 18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한 것이다. 하지만 손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 250달러(한화 약 28만원)가 고작이었다. B씨는 “장시간 노동으로 월 2000~5000달러를 벌었지만, 생활비 10% 정도만 수령하고 나머지는 모두 상납했다”고 했다.
 
  B씨 같은 인력을 관리하는 조장은 현지 아파트와 컴퓨터 장비를 사비로 마련하고 조원들을 선발해 통제하는 전권을 갖고 있다. 조원들의 신분을 미국인이나 유럽인 등으로 위장해 온라인으로 하청 중개 사이트에 접속해 일감을 수주하도록 했다.
 
  실적 우수자에겐 현금을 지급하고 부진자는 북한으로 소환시키는 방식으로 경쟁을 유도했다. 당시 사정 당국 관계자는 “조장은 조원이 벌어들인 돈에서 운영비 등을 뺀 뒤 평양에 현금으로 상납했다”며 “금융 제재 때문에 상납에는 외교행낭을 이용한다”고 밝혔다.
 
  당의 상납금 독촉이 심해지자 B씨는 귀순을 결심했다. 4월 22일 사무실을 탈출해 4월 28일 국정원에 귀순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해외 안가에서 그를 보호하다 6월 10일 국내에 입국 조치했다. B씨는 “중국 단둥과 선양, 옌지 일대를 중심으로 러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무대로 1500여 명의 자신과 같은 북한 정보기술(IT) 전문가가 활동하면서 외화벌이를 한다”고 증언했다. 이런 식의 외화벌이는 2010년경 인도에 체류하던 북한 연수생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고수익을 낸 것을 계기로 “IT 분야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정부 당국은 이 해외 파견 IT 전문가들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난 다양한 해킹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국정원은 B씨를 통해 북한의 IT 기술 수준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6월 말 캄보디아 북한식당 여종업원 비공개 국내 입국
 
캄보디아에는 북한식당이 9개가 있었는데 2016년 2월 이후 한·미의 독자 제재와 유엔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대부분 문을 닫았다. 캄보디아에 있던 북한식당의 간판 모습. 사진=조선DB
  캄보디아 소재 북한식당에서 일하던 D씨는 당시 임신 5개월이었지만 탈출을 결심한다. 식당 접대원으로 근무 시 지배인의 임금갈취, 인신모독에 불만을 품던 중 주방청소원으로 보직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D씨는 결핵 증세까지 있었지만 “한국에 온 것이 매우 기쁘다”며 시종 밝은 표정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D씨도 류경식당 여종업원, 옥류관 창업자의 손녀라고 주장한 A씨와 마찬가지로 평양시 거주 중상류층의 자녀였다.
 
  2016년 6월 30일 국내에 입국한 그녀는 북한 해외식당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이 성매매에 강제 동원되고 있다 등의 폭로를 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외식당의 영업난 시 중국 측 동업자의 투자금 회수 압박을 무마하기 위해 여종업원을 중국인 동업자가 운영하는 식당에 대여하는 사례가 많음. (이 경우 중국인 사장의 요구로 성매매에 강제 동원되기도 함.)
 
  ○체육성 산하인 캄보디아 식당은 수익금 일부를 북한 축구대표팀 운영경비와 훈련경비로 사용하고 있음.〉
 
  D씨는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D씨는 “임수경 의원이 2014년 12월경 캄보디아에 있는 우리 식당에 방문했을 때 종업원들이 ‘평양에서 유명하시며 존경한다’고 환영했으나 차갑게 행동했다”며 “종업원 사이에서 ‘변질됐다’는 평이 나왔다”고 전했다.
 
  임 전 의원은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비밀리에 방북한 인물. 임 전 의원은 2012년 6월 탈북 대학생에게 “근본도, 개념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들어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개겨?”라고 폭언을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폭언으로 종북이란 융단 폭격을 맞은 것이 2014년 캄보디아 북한식당 방문 시 차갑게 행동한 이유라는 분석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김철성 3등 서기관
 
  2016년 7월 2일 김철성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3등 서기관이 우리 쪽에 가족 동반 귀순 의사를 표명했다. 상납금 납부 등 평양 지시를 성실히 이행했음에도 파견 4년 만에 1주 내 무조건 철수하라는 지시를 받고, 신변에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부인은 귀순에 반대했다. 잘나가는 집안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장인을 비롯하여 동서, 처남이 고위층이었다.
 
  김철성은 아들의 장래를 위해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부인을 설득했다. 김 서기관의 아들은 희귀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김 서기관 일가족은 7월 5일 국내로 입국했다.
 
 
  북한 수학 영재 탈출
 
  2016년 7월 28일 홍콩 《명보(明報)》는 “지난 6일부터 16일까지 홍콩 과학기술대학에서 열린 제57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했던 18세 북한 남학생이 일주일 전 북한 대표단을 이탈해 한국총영사관에 망명 신청을 했다”고 전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탈북자는 수학올림피아드 참가자”라며 “이 학생은 15일 대회 폐막식에 참석한 뒤 16일 밤과 17일 아침 사이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인솔 교사 2명과 나머지 학생 5명 등 북한 대표단은 19일 홍콩을 떠났다고 신문은 전했다. 국내 언론의 이 남학생 관련 보도는 홍콩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그대로 전한 것뿐이다. 그의 탈북 과정과 본인의 심정까지 자세히 밝혀진 것은 이번 《월간조선》 보도가 처음이다.
 
  망명 신청을 한 남학생은 리정열 군이다. 영재 교육기관인 평양 제1중학교 출신인 리군은 2016년 7월 17일 올림피아드가 열렸던 홍콩 과학 기술 대학교(Hong Kong University of Technology and Technology) 기숙사에서 공항까지 무작정 택시를 타고 빠져나갔다. 북한 당국의 감시 때문에 스마트폰과 여권은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공항에 가면 일단 한국인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항에서 한국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발견한 리군은 그들에게 접근해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리군의 말을 들은 한국 항공사 직원은 한국영사관에 연락했고, 영사관 측은 리군에게 혼자 택시를 타고 홍콩 한국총영사관으로 올 것을 권했다. 외교관은 탈북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오래전부터 탈북을 준비한 덕분에 리군은 홍콩섬 애드미럴티의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을 찾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한다. 리군은 영사관에서 2개월을 보냈다. 9월 24일 한국에 들어온 리군은 북한에 있는 가족의 안위를 우려 “기자회견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리군의 부친은 수학에 재능을 보이는 아들을 위해 교사인 자신의 신분상의 불이익을 각오한 채 리군의 탈북을 독려했다. 리군이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참가를 위한 출북(出北) 전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자, 본인 뜻대로 하라며 미화 200달러를 손에 쥐여준 것이다.
 
  그는 귀순 동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평소 KBS 방송 청취, 한국 소설 탐독을 통해 한국을 동경해 왔으며 김정은 등 북한 지도층이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 같아 반감을 갖고 있었다. 2013년부터 매년 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했으나 4회 연속 은메달만 획득, 해외유학(금메달 획득 시 가능)이 불가해 귀순을 결심했다. 부모님과 대한민국에 보답하고 싶다.”
 
  과학기술강국을 목표로 하는 북한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수학 영재가 탈북에 나선 것은 여느 탈북 사례와는 다르다는 게 당시 북한 전문가들의 시각이었다. 북한은 표면적으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면에서는 중국을 통해 리군의 북한 송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북한은 리군의 한국 망명으로 2017년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2016년 8월 쿠웨이트 北 근로자 국내 입국
 
  2016년 8월 북한은 쿠웨이트 건설 현장으로 파견 보낸 노동자 수십 명이 급여 지급 문제로 집단 파업하자 이들을 강제 소환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월급 대신에 귀국하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돈표를 주겠다는 자국 건설사의 제안에 반발, 2015년 12월 집단 파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쿠웨이트에 파견 나온 북한 근로자 E씨는 우리 공관에 귀순을 요청했다. 군의관(우리의 중위~대위) 출신이었던 E씨는 쿠웨이트 외곽 지역에 소재한 농장에서 주택보수 및 조경공사에 종사했다. 북한은 E씨가 우리 공관과 접촉하자, 쿠웨이트 경찰에 절도죄로 신고했다. 국내 송환이 지연된 이유였다. 8월 31일 입국한 그의 귀순 동기는 과도한 상납금 등 임금 착취였다.
 
  “쿠웨이트 파견(2010년 10월) 이후 5년 넘게 해외 생활을 했는데 번 돈이 2000달러(한화 약 223만원)에 불과했다. 한 달에 1800달러 정도를 버는데 식비, 김일성 기금 등 각종 명목으로 떼이고 실제로 받는 돈은 100달러에 불과했다.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서는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동경해 오다 탈북을 결정했다.”
 
  당시 E씨는 북한 인권 참상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에 북한 체제의 모순과 잔학성, 해외 노동자 및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널리 알려 해방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수십 년을 북한 체제에 속아 가슴속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2016년 9월 인민대학습당 산하 주러시아 무역지사 부대표 일가족 귀순
 
  인민대학습당은 북한 최대의 도서관이다. 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을 떠올리면 된다. 인민대학습당 산하 주러시아 무역지사 부대표 F씨는 2016년 8월 중앙당 검열 시 소환대상으로 지목됐다. 딸의 SNS 사용이 발각된 것이다. 딸은 F씨의 해외근무 기간 중 한국 관련 인터넷 기사를 가족들에게 전파했다. 9월 8일 국내에 입국한 그는 해외 주재원들이 김정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폭로했다.
 
  “해외 주재원들은 ‘김정은 체제가 창피하다’고 생각해 중국인으로 행세할 정도다.”
 
  E씨는 “해외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핵실험에 사용하는 데 정말 증오스럽다. 북한 노동자들의 대 러시아 송출 알선 업무도 담당했었는데, 자괴감이 상당했다”고 덧붙였다.
 
 
  2016년 9월 駐中 북한 보건대표 일가족 탈북
 
  2016년 9월 28일 북한 당 과학교육부 주중 보건대표 H씨가 무사히 탈출, 국내로 들어왔다. H씨는 재일(在日) 북송(北送)교포 출신으로 평양의학대학 졸업 후 의학과학병원, 병원협회 베이징 지사 등에서 근무한 의료 전문가다. 그가 탈북을 결심한 계기는 ‘200일 전투’ 때문. 북한 김정은은 2016년 5월 28일 당, 국가, 경제, 무력기관 일꾼 연석회의에서 200일 전투(노동력 동원 운동)를 선포했다. 200일 전투 선포로 인해 상납금이 2배로 올랐다. 고민하던 H씨는 국정원 직원에게 귀순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고는 독약 앰풀을 챙겼다. 죽기를 각오하고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조부 고향이 경북 예천이라 고향에 돌아온 것 같다. 귀순 실패 시 독약 앰풀을 삼키려고 했는데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감사하다. 향후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다.”
 
 
  2016년 10월 17일 망명한 주말레이시아 북한 공관원
 
김정은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당 39호실 산하 경흥무역의 2등 서기관은 “북한 엘리트 사이에는 김정은을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TV조선 화면 캡처
  주말레이시아 북한 공관원 I씨(2등 서기관)는 조선노동당 39호실 산하 경흥무역 지사원으로 2012년 10월 현지에 부임했다. 당 39호실은 소속 기관을 통해 직접 비자금을 조성하고, 인민군 정찰총국과 무역성 등 당·정·군에서 보내오는 ‘상납금’과 ‘충성자금’을 관리하는 김정은의 개인 금고 역할을 한다.
 
  39호실이 만들어진 것은 1974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후계자로 정해진 직후로, 그 이듬해인 1975년 조선노동당 창건 30년 기념행사를 치르기 위해 39호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는 행사에 참석한 당 간부와 각계 주민 대표 등 1만명에게 시계와 컬러TV를 선물했으며, 그 행사 자금 마련과 집행에 39호실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39호실 자금은 북한 공식 예산과는 별도 운영되며 오로지 최고 권력자의 통치자금으로만 사용됐고, 현재는 김정은의 권력 유지에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김정은이 직접 자금 용도와 규모를 지정하고 승인하는 등 39호실 운영은 극비리에 이뤄지고 있다”면서 “서기실과 39호실의 소수 측근이 자금을 관리한다”고 했다.
 
  39호실 산하엔 I씨가 몸담았던 경흥무역과 대성그룹, 대성경제연합체 등 100여 개의 무역회사, 은행, 금광 등이 있다. 39호실은 소속 기관을 손발 삼아 북한의 알짜배기 수출 상품인 금·은과 송이버섯 등 특산물을 판매한다. 달러 현찰을 직접 만지는 북한 내 호텔과 외화 상점들도 39호실 소속으로 알려졌다. 세계에 퍼져 있는 북한식당들이 벌어들이는 달러도 39호실로 흘러들어 간다.
 
  그런 39호실은 김정일 통치 시절엔 해마다 5억 달러(약 600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직접 조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 등으로 대북 경제 제재가 심해지면서 현재 39호실 소속 기관들이 직접 벌어들이는 수입은 예전의 절반인 2억~3억 달러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I씨가 국정원에 밝힌 귀순 동기는 이렇다.
 
  “2016년 9월 3일 평양으로부터 일방적 철수 명령을 받고 고민하던 중 5차 핵실험 도발(9월 9일)을 보고 ‘더는 북한 체제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 탈북을 준비해 왔다. 김정은은 무모하고 사리 분별력이 없으며, 안하무인이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이는 모든 북한 엘리트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현지 북한 엘리트들 사이에는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더 강하게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탈북 권유도 영향
 
  2016년 4월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후 6개월간 당·정·군 핵심 계층 11명이 줄줄이 탈북했다. 이들의 탈북 이유는 ‘외화 상납금’ 압박 등도 있었지만, 박 전 대통령의 탈북 권유도 한몫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 주민들을 향해 탈북을 권유했다.
 
  2016년 8월 15일 광복절 71주년 경축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북한 당국은 더는 주민들의 기본적 인권과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영위할 권리를 외면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 당국의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 속에 있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북한 당국의 간부들과 모든 북한 주민 여러분’이라는 호칭을 쓰며 “통일은 여러분 모두가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 없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각자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행복을 추구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핵과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는 새로운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데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 경축사에 대해 그 한 달 전(2016년 7월)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이 없이 북한 간부, 주민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란 메시지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며 “개인적으로 본인의 탈북을 염두에 두신 환영사로 느껴져 경축사를 듣던 중 온 가족이 일어나 손뼉을 쳤다”고 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엘리트층은 ‘우리 대는 어쩔 수 없이 김가 통치하에서 살지만 자식들까지 이렇게 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탈북을 권유했다.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의 도발과 반인륜적 통치가 종식될 수 있도록 북한 주민 여러분에게 진실을 알리고, 여러분 모두 인간의 존엄을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북한 주민 여러분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놓을 테니,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
 
  박 전 대통령은 10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평통 해외자문위원과의 ‘통일 대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 북한 정권은 가혹한 공포정치로 북한 주민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모든 길을 열어놓고 맞이할 것이다. 굶주림과 폭압을 견디지 못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이 급증하고 있고 북한 체제를 뒷받침하던 엘리트층과 군대마저 암울한 북한 현실에 절망해 이탈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길에는 북한 지역의 간부와 군인, 주민들도 예외일 수 없다. 탈북 주민들은 통일 과정과 통일 후의 남북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데,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 정부는 탈북민 3만명 시대를 맞아 북한 이탈 주민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하고 적응해서 꿈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울 뿐”
 
  “대한민국에 와서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실현하라”는 권유는 북한 엘리트층의 마음을 움직였다. 2016년 9월 탈북한 인민대학습당 산하 주러시아 무역지사 부대표 F씨는 “한국 정부의 류경식당 탈북 종업원들의 보호 조치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내용을 보고 (탈북을) 최종 결심했다”고 했다. 주말레이시아 북한 공관원 I씨(2등 서기관)는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국군의 날 대북 메시지를 듣고, 북한 현실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귀순 시 따뜻이 맞이하겠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귀순을 결정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의 권유에 북한 엘리트층이 흔들릴 것이라는 점을 북한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0월 4일 북한이 박 전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들을 향해 탈북을 권유한 발언에 대해 “우리의 최고 존엄까지 감히 모독하면서 ‘탈북’을 선동하는 미친 나발질도 서슴지 않았다”고 펄쩍 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이날 ‘극악한 대결 망발을 늘어놓은 박근혜 역도의 교활한 속내를 까밝힌다’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당당한 핵보유국, 인민의 지상낙원으로 강성번영하는 우리 공화국의 위력에 전률한 산송장의 비명소리”라며 이같이 비난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대통령의 발언 뒤 곧바로 노동당 기관지를 통해 논평을 낸 것은 북한 주민의 동요를 고려한 내부용 조치로 보인다”며 “계속해서 다른 기관들이 비난 성명을 낼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 다음날인 1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주제넘은 입방아질, 정신병자의 잠꼬대에 불과하다”고 했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김정은을 북한 정권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제까지의 대북 발언 중 가장 강력한 수위였다”며 “북한 입장에선 김정은 정권 붕괴에 대한 선전포고로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외교·안보팀 핵심 관계자는 “북한 내 엘리트층의 탈북 러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됨과 동시에 완전히 끊겼다”며 “이런 분위기가 조금만 더 지속됐다면 북한은 붕괴했을 것이다.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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