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장수(有病長壽)시대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0.7세인데 평균 건강수명은 72.6세다. 평균 8.1년은 질병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병이 나면 누군가는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곁에 있는 사람에게 그 무게는 고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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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2013년까지, 꼭 10년 동안 파킨슨 병에 걸린 아내의 곁을 지킨 김석규 전 대사

노년에 찾아오는 병은 예고 없이 시작된다. 한 번 시작되면 일일드라마처럼 매일 안방 문을 두드린다. 거기다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고 매일 점층적으로 꾸준히 상황은 악화된다. 그러다보면 주인공은 지치기 마련, 통계에 따르면 배우자 중 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간병하는 배우자 역시 사망위험이 68%로 높아진다고 한다. 별거에서 이혼으로 심지어는 동반 자살을 선택하는 극단적인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아내가 병에 걸렸을 경우, 곁을 지키는 남편은 극히 드물다. 아내가 발병한 경우 남편이 발병했을 경우보다 이혼율이 7배 높다고 한다. 갈수록 흉흉한 소식만 들리던 차,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김석규(79) 전 대사의 이야기였다. 파킨슨 병 아내를 10년 동안 간병한 뒤 그 기록을 <파킨슨병 아내 곁에서>라는 책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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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첫 부임지 멕시코에서 아내와 함께

김 전 대사는 1964년 주 멕시코 대사관 서기관으로 외교관을 시작한 뒤 스페인, 스웨덴, 파라과이 등지에서 근무했다. 주 파라과이,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등의 대사를 지낸 그는 얼마 전 파킨슨 병으로 아내를 잃었다. 남편의 근무지에 늘 그림자처럼 동행했던 아내는 마지막 임지 도쿄에서 귀국한 뒤 파킨슨 병 확진을 받았다. 이제 둘이서 오붓이 여행다니며 살자는 소박한 꿈을 채 이루기도 전이었다. 원인불명, 치료불가의 병 앞에 부부는 황망했다. 그 후 김 전 대사는 20131월까지 10년을 꼬박 아내 곁을 지켰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2012년 개봉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은 미하엘 하나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를 떠올리게 한다. 80대의 아름다운 부부, 우아한 아내에게 찾아온 참혹한 병마.. 영화가 끝난 뒤 김 전 대사는 속으로 스스로를 격려했다고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아내를 안락사 시킴으로서) 병과의 싸움을 끝내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 까지 곁을 지켰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투쟁이었다. 아내가 걸을 수 없게 되고, 말할 수 없게 되고, 씹을 수 없게 되고, 숨 쉴 수 없게 되는 과정을 찬찬히 지켜봤다. 그동안 아내의 휠체어를 밀었고, 굳어진 손에 연필을 쥐어주었고, 나중에는 호스를 연결해 음식물과 공기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그 하루 하루를 기록했다. 파킨슨병에 필요한 의료 기구는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하는지, 간병인은 어떻게 구하는지, 한 간병인과 오래 연을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적었다. 겪어본 사람만 아는 일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지 1년이 지났다. 아직도 그 사실이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김석규 전 대사를 만났다. 아내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자택은, 혼자 사는 남자의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정하고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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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풍경, 10000원
파킨슨병에 대한 서적이 이렇게 부족한 줄 몰랐어요. '필요한 책이 이제야 나왔다'는 후기가 많더군요.
 
-아내가 파킨슨 병 확진을 받고 나서 관련서적을 구해보려고 여러 서점을 다녔는데, 없더라고요. 의학적으로 난해한 책들만 있고요. 이렇게 실제 겪은 기록이 있었으면 했는데요. 지난 10년 동안 간병하는 기록을 남겼어요. 의사가 한 말도 적고, 제가 너무 화가 나는 날에는 그런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요. 컴퓨터로 하다보니까 기록이 쌓여있더라고요
 
책의 기록이 구체적이고 소소해서 놀랐습니다. 병원에서 오래 기다렸는데 막상 진료는 몇 분 못 받고 나와야 하는 이야기는 특히 공감이 되더라고요.
 
-한 참을 기다려서 몇 분을 보거든요. 나중에는 아내가 움직이질 못하니까 제가 대신 가서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받아왔어요. 가면 안녕하세요? 어떠세요?” 이러세요. 그러고 설명하는데 5분도 안 걸려요.
 
환자나 보호자는 그 5분이 절박할텐데요.
 
-더 듣고 싶은데 다음 사람이러시면 몸 둘 바를 모르는 거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A4용지에 적었어요. 그동안의 증상이 어땠는지 꼼꼼히 기록해서 가지고 갔죠. 그럼 그러면 관심을 갖고 봐요. 그러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돼요. “이렇게 해오시면 저희도 편하다고 하면서요. 책 나오고 나서는 담당 선생님께도 연락이 왔어요. 이런 기록은 전공의들한테도 필요하다고요. 황송했죠.
   
책을 보니 간병인(이 중국인일 경우 이 분)의 비자문제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더군요.
 
-원래는 그런 수속을 해보지 않았죠. 하지만 그 간병인 한 사람을 보내면 그만큼 힘들거든요. 제가 비자를 받아주면, 그 사람은 그동안 간병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책 나오고 여러분 연락이 왔어요. 한 기업인은 자기 부인이 (발병한지) 4년 됐대요. 증세는 사람마다 달라요. 그 분이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같이 식사도 했어요.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세세한 부분들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셔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남편이 병에 걸렸을 경우와 아내가 병에 걸렸을 경우 비율이 다른데요. 특히 아내가 병에 걸리면 이혼율이 7배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아내가 걸리면 병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더라고요. 저희는 여기 집 안에 침대를 뒀어요. 사람이 사는 게 아니죠. 말도 못하죠, 움직이지도 못하죠. 돌아가실 때도 몰랐어요. 기계가 계속 숨을 쉬게 해주니까, 기계 소리로 숨을 쉬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체온이 떨어졌더라고요. 제가 좋은 남편이라 한 게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한 거죠.
 
자녀분들을 생각한 면도 있지요.
 
-아이들을 불효자 만들수는 없잖아요. 아이들은 간병을 할 형편이 안 되는데 제가 안하면 아이들이 해야 하니까요. 각자 생활이 있으니, 병원 한 번 같이 가기도 힘든 걸요.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아내도 아팠다는 거 아세요? 그가 젊었을 때는 난봉꾼이었는데, 아내가 돌아갈 때까지 병상을 지켰대요. 그 마음을 ‘아내에 대한 연민이었다고 썼더라고요. 10년이 짧지 않아요. 나중에는 거의 연명치료에 의존했어요. 몸은 편한데 마음은 슬프죠저는 그걸 슬픈 자유라고 표현했어요.
 
아내의 연명치료를 시작한 후, 나의 슬픈 자유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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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부부의 투병기를 다룬 영화, <아무르>

자유가 좀 생기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건가요?
 
-10년 동안 꾸준히 썼죠. 글을 쓰는 게 저에게도 위로가 됐어요. 어디라도 풀어야 분이 풀리잖아요.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고요. 어느 날 하루 등산만 다녀와도 마음이 풀려요.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만 맞아도 좋고요. 아내가 돌아간 후로는 스페인에 다녀왔어요. 어릴 적에 살던 영주에도 가보고요. 예전에는 그 중심에 아내가 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책이에요. 배우자의 존재에 대해서요.
 
-외교관으로 지낼 적에 먼저 책도 한 번 냈어요. <코리아 게이트>라는 책인데요. 그 책이랑은 느낌이 많이 달라요. 그런데 꼭 제2의 자서전 같아요.
 
유병장수시대잖아요.
 
-그래요, 파킨슨병이 많더라고요. 저는 이제 증상이 보이잖아요. 운동하러 가서도 자세를 보면 알아요. 저희 아내도 처음에는 휠체어 안탄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타고 쇼핑도 가고 운동도 가고 했어요. 응급실에도 자주 갔어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만 가도 호텔로 옮긴거 같다고 하셨죠.
 
-합격자 발표 난 거 같아요. 그 때 어떻게 했나 싶어요. 지금 다시 떠올리니까 또 새삼스럽네요. 다시 돌아가면 못 할거 같아요. (웃음)
 
병을 받아들이기가 본인이 가장 힘들었겠죠.
 
-그래서 미국까지 갔던 거예요. (아내는) '나는 그런 병에 걸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자각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 했어요. 특히나 (황우석 박사의) 줄기 세포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 희망이 사라졌을 때 정말 힘들어했죠. 저희가 그 소식 듣고 가장 먼저 등록해서 번호가 굉장히 앞이었거든요. 그 다음에도 신약에 대한 보도만 나와도 희망을 걸었어요. 보도만 보면 그 약만 먹으면 꼭 다 나을 거 같거든요.
 
아내가 허물어져 가는 걸 지켜보는 것도 힘드셨겠고요.
 
-전철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됐다고 좋아했는데, 한 번도 못타보고 갔다고요. 다른 사람들 콧줄(코에 끼워 음식물을 넘기는 호스)하는 거 보면 절대로 안하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악화돼서 해야했죠. 사람이 산다는 게 참 그렇더라고요.
 
책에 삽입된 아드님이 쓴 편지 중에서 어머니 지금 무슨 생각하시는지 좀 알고 싶은데가 인상적이었어요.
 
-우리 아들이 독실한 신자니까 제 엄마한테 천국에서 만나 못 다한 이야기하자고 하더군요. 저는 우리 아들한테 그래서 이야기했어요. "우리 아침마다 모닝콜하자"고요. 문자로 자꾸 하면 돈드니까 메신저로.(웃음) 제가 먼저 굿모닝하고 보내요. 환자나 병,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죽음이 가깝다는 걸 알아요. 매일 체크를 하는 거죠. 나 살아있다고요. 준비도 해놨어요. "아들아, 내가 유사시에는 어느 병원에 어떻게 연락하라"는 이야기도 남겨 두고요. 그게 정말 중요해요. 이번 10년 동안 제가 죽음에 대해 정말 공부를 많이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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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임지였던 주일대사 시절.

그런데 10년은 참 길잖아요.
 
-그 하루하루가 새로워요. 주말이 되면 간병인이 가니까, 제가 다 해야 하거든요. 그럼 뭘 체크해야 하나 다 적어두고요.
 
그렇기 때문에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유언을 해야한다고 쓰셨는데, 혹시 준비 하셨나요?
 
-아직은 안했어요. 초안만 잡아 뒀어요. 아내는 돌아갈 때 제가 책임지고 뒤처리를 했지만, 제가 갈 때는 그걸 해줄 사람이 없어요. 유고시에 아이들한테 어려움을 남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초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묘지도 다 만들어 놨어요. 유언도 매일 생각해요. 서서히 준비해야겠다. 가구 하나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놓고요. 옛날처럼 컴퓨터로 쓰는데, 아직 잘 안잡혀요.
 
꼭 남기고 싶은 말은요?
 
-사이좋게 지내라. 집은 (3남매니까) 3등분 해라, 그런 내용이죠.
 
아주 구체적이네요.
 
-그게 돌아간 다음에는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공평하게 남겨두고 가려고 해요. 기본을 잘 해두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죽은 다음에 싸우는 거라 어쩔 수 없지만, 덜 싸우게는 해줘야죠. (웃음)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사모님이 주신 선물이네요.
 
-맞습니다. 저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직접 봤기 때문에,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죠. 제 아내가 준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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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은 결국 안락사를 결정한다
영화 <아무르>후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아무르는 끝에 (아내를) 죽이잖아요. 저는 끝까지 지켰죠. 영화를 봐도 저는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게 돼요. 붕대는 어떻게 감았나, 손은 어떻게 마비되나.. 제 상황에 대입이 되니까요. 주인공은 소금을 달라고 하는데 답이 없잖아요. 저희 아내는 설거지 하다가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어요. 병이 그렇게 시작돼요. 이유도 없이, 원인도 모른채. 뇌질환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에요.
   
보내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있으시죠.
 
-해방인 거 같은데 그렇지도 않아요. 그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파킨슨병은 가족병이라고 하셨죠.
 
-나라에서 지원이 되지 않는 병이었거든요. 한 달에 의료비가 많이 들어요. 그런 장비 하나하나를 어디에서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도 각자 알아봐야 하고요.
 
발병 비율이 높은데도 국가 지원이 되지 않는 병이더라고요.
 
-저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 배웠어요. 그 전에는 이런 병이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요.
당연히 되던 것들을 하나씩 못하게 된다는 게 참 안타깝더라고요. ‘강직이 무서워요. 처음에는 손, 발로 오지만 나중에는 내장기관으로도 오거든요.
 
정서적으로도 타격이 오죠.
 
-처음에는 환자에게 가벼운 우울증이 와요. 나중에는 남은 생명이 아깝게 느껴져서 치료책을 열정적으로 찾게 되고요. 더 진행되면 치매가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말도 행동도 못하게 되니까 실은 알수가 없죠. 병이 진행되면 달라지는 것도 많아요.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아픈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해요. 근데 나중에는 사람이 그리워지거든요, 언제 다시 볼지 모르고요. 그래서 불러요. 아내의 여고 동창생들이 한번 찾아왔었죠.
 
아픈 사람이 있기 전에는 아픈 게 남 일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면 누군가의 엄마, 친구, 또 소녀인데요.
 
-병원에 가보면 전부 환자에요. 이렇게 파킨슨이 많은가 싶어요. 보호자들도 다 환자처럼 지쳐있고요모두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싸우고 이겨야 다음날 또 싸우니까요. 싸움이 복합적이에요. 환자에 대한 마음도 그렇고, 아이들에게 드는 마음도 있고, 제 스스로에 대한 마음도 있어요. 내가 이래서는 안된다라고 다잡기도 하고요. 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제 경우에는 글이었는데, 간병하는 가족들에게도 스스로 재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는 생각이 든 적은 없으세요?
 
-처음에는 그랬죠. 그런데 나중에는 왜 나만이 아니라, 나한테 올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남들은 어떻게 하나 싶은데, 너무 자료가 없어서 제가 자료를 남기게 됐죠.
 
아내 보낸 후 홀로 남은 나의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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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간직한 세 아이의 모습, 아내의 침대 곁에 있었다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처음 만났나요?
 
우리는 시골에서 만났죠. 나는 성주 농업고등학교를 나왔어요. 피난 중에 저는 학생이었고, 선생님 댁을 찾아갔는데 그 집 따님이었어요. 그 때 얼굴을 봤어요. 저희는 중학교 때 6.25 사변이 났거든요. 중학교는 거의 못 다니고 고등학교를 겨우 마쳤죠.
 
외교관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살아왔는데, 아내 분도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생각해보면 그 때 아내 나이가 20대 중반인데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고, 국내외 손님들 대접 다했죠. 수십명 식사대접을 하기도 하고요. 그 때는 몰랐는데, 우리 딸을 키워보니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더라고요. 요즘 사람들 요리 잘 못하잖아요.(웃음) 그 때는 고마운 줄 몰랐죠. 당연히 하는 줄 알았지. 지금은 내가 너무 몰라줬구나 싶기도 해요. 아이들 어릴 때 생각이 지금은 많이 나요.
 
그 때를 떠올리다보니 새삼 고마우셨군요.
 
-이제 내가 갚는다 싶기는 했죠. 아이들한테도 전에는 살갑게 대하지 못했는데, 이제라도 해보자 싶어요.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아들이랑 단 둘이 술 한 잔 했어요.(웃음)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 하나씩 적어서 실제로 해보려고 해요.
 
일종의 버킷리스트 같은 거네요.
 
-근무했던 지역들도 한 번씩 다녀오려고 들춰보고 있어요. 내 머리의 자물쇠가 열린 기분이에요. 그 때 주소들도 새록새록 기억이 나고요. 지나고 보니 금방이더라고요. 아내 돌아가신지도 벌써 2년이 됐죠. 지금 생각해보니까 할 일을 했고 내 스스로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를 꼽는 건 힘든 일이지만, 뭐가 가장 안타까우셨어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게 제일 답답했죠. 단절이 되니까요. 제가 다 알아서 해줘야 하니까 책임감이 더 크더라고요. 연필로 작게라도 의사표시를 할 때가 좋았는데요.
 
돌아가신 뒤로 매 달 찾아가보셨다고요.
 
-내 소풍가는 날이에요. 꽃을 사가지고 갔어요. 여기가 내 누울 자리구나 싶어 보고 오기도 하고요. 그 자리를 얻으려고 공원관리소장한테 얼마나 아양을 떨었다고요. 함께 누울 수 있게 해달라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보내고요.(웃음) 지금은 아내에게 갈 때 조화를 사가지고 가요. 시드는 게 보기 안 좋아서요. 요즘은 두 달에 한 번 정도 갑니다.
 
생전에도 꽃 선물을 하셨나요?
 
-아뇨, 못했죠. (웃음) 의식 있을 때 더 잘할 걸, 없을 때 잘한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대신 좋은 책을 선물로 남기셨으니까요.
 
-그게 유일한 위안이죠. 이 책은 우리 두 사람 공저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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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산소에 갈 때 꼭 사가지고 가는 선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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