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는 거리 : 190km
⊙ 걷는 시간 : 14일
⊙ 코스 : 베시사하르~마낭~쏘롱 라~따또빠니~포카라
⊙ 난이도 : 매우 힘들어요
⊙ 좋은 계절 : 10~11월

쏘롱 라를 넘으면 풍경이 티베트풍으로 바뀐다. 무너진 곰파와 설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자르코트 입구에서 발길을 멈춘 트레커들.
  안나푸르나는 ‘풍요의 여신’(힌두교적 해석)이 다스리는 땅으로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이다.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다우며 접근이 쉽고, 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고소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에서 가장 매력적인 트레킹 코스는 14일에 걸쳐 안나푸르나 산군을 한 바퀴 도는 라운딩이다. 라운딩은 안나푸르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5416m 높이의 쏘롱 라(Thorung La)고개를 넘으면서 풍경이 티베트풍으로 바뀌는 극적인 구조를 지녔다.
 
 
  폭설로 막힌 쏘롱 라, 하산하는 트레커들
 
강한 흙바람을 맞으며 칼리간다키강을 내려가는 트레커들. 까끄베니에서 좀솜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이 길은 고통스럽지만 황홀하다.
  안나푸르나에서 게루마을을 만난 건 순전히 눈 때문이었다. 사흘 동안 밤낮없이 퍼붓던 지긋지긋한 눈. 마낭에서 폭설을 만나기 직전까지 안나푸르나 라운딩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카트만두에서 버스를 타고 쿠디에서 내려 부블레 1박, 시리조리 2박, 다라빠니 3박, 차메 4박, 아랫피상 5박, 그리고 눈 맞으며 걸어 마낭까지. 첫날 쿠디에서 내려 부블레 가는 길에 신기루처럼 마나슬루(8156m·세계에서 8번째로 높은 산)가 나타나 몸과 마음이 설레었고, 이른 아침 출발하며 ‘행복한 걷기’를 떠올린 둘째 날, 셋째 날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마을 ‘달’을 지났다. 넷째 날 다라빠니를 지나자 안나푸르나Ⅱ(7939m)가 너른 품을 벌리고 맞아 줬다. 그리고 피상(Pisang)으로 가는 심원한 숲길에 시간이 더디 흐르는 평화가 있었다.
 
  마낭은 안나푸르나 동쪽 지방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라운딩이 시작되는 베시사하르에서 마낭까지 꼬박 6일을 걸어야 한다. 마낭에 도착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를 쉬며 체력을 보충한다. 쏘롱 라를 넘기 위한 준비인 셈이다. 로지(lodge・숙소 겸 식당)는 올라오는 사람, 쏘롱 라로 향하다 길이 막혀 내려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식당에서 합석한 프랑스 노부부는 내일 내려간다고 했다. 이틀째 내리는 눈에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고, 숙련된 가이드들도 ‘10월에 이런 폭설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낭에서 그냥 하산하는 것은 엄청난 손해다. 왔던 길을 되짚어 베시사하르까지 내려가려면 최소 3일이 걸린다. 3일이면 마낭에서 쏘롱 라를 넘어 불교와 힌두교의 성지 묵티나트에 도착할 수 있는 날짜다. 하산은 안나푸르나 라운딩의 실패를 의미한다.
 
  마낭에서 이틀째 밤, 하늘에서 별이 반짝 빛나 희망을 품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오전에는 다시 눈발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마낭에서 무작정 버티던 사람들도 하나둘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로지 마당에 쌓이는 눈발 속에서 누군가 만들어 놓은 커다란 눈사람만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Two trekkers and one guide death!”(트레커 두 명과 가이드 한 명이 죽었대요!)
 
  하산 길에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마낭에서 함께 내려온 프랑스 여성의 목소리에는 놀람과 절망이 묻어 있었다. 폭설을 뚫고 무리하게 쏘롱 라를 넘던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사실인지 소문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쏘롱 라를 넘겠다는 의지와 희망은 사라져 버렸다.
 
 
  안나푸르나 숨소리가 들리는 게루마을
 
피상으로 가는 길에 만난 잔도. 바위를 파내 길을 만들었다.
  다음 날, 모처럼 날이 활짝 갰다. 아침을 먹고 잠시 시퍼런 하늘을 바라보다 피상에서 3시간 거리에 있다는 오지 마을인 게루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마음은 점점 자라나 게루를 거쳐 다시 마낭으로 올라 쏘롱 라에 도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날씨에 따라 사람 마음이 이렇게 극과 극으로 움직인다.
 
  피상에서 게루로 가는 길에는 발자국이 없었다. 지나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눈을 헤치고 나가는 러셀보다 힘든 건 눈에 반사된 햇살이었다. 살갗이 익을 정도로 뜨거워 눈만 내놓고 얼굴을 전부 가리고 걸어야 했다. 게루 마을의 일주문에 해당하는 마니차(돌탑)까지 길이 순하고 전망이 좋았다. 부처를 새겨 놓은 마니차는 지금까지 보아 온 것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멀리 게루 마을이 보이는데, 큰 나무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 오른다.
 
  마니차에서 게루까지 지그재그 급경사가 끝없이 이어졌다. 얼마나 올랐을까. 거의 탈진 직전에 이르러 모퉁이를 돌아서자 돌로 쌓은 축대가 보였다. 그 위에 거대한 나무가 버티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 나무는 한눈에도 마을을 수호하는 신목(神木)임을 알 수 있었다. 마니차에서 보았던 바로 그 나무였다. 신목 아래에는 몇 개의 석탑이 있었고 놀랍게도 그 앞에 나무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곳은 마을 토속 종교와 안나푸르나가 기막히게 어울리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의자에 앉으니 펄럭이는 타르초(불경을 새겨 막대기에 단 긴 깃발)와 룽다(불경을 새긴 작은 깃발) 뒤로 손을 뻗으면 안나푸르나Ⅱ가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안나푸르나Ⅱ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안나푸르나Ⅳ(7525m)~안나푸르나Ⅲ(7555m)~강가푸르나(7455m)~캉샤르캉(7485m) 연봉이 일필휘지를 그렸다. 누구일까. 이런 황홀한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라고 의자를 만들어 놓은 사람은. 마을은 신목 위 산비탈에 다랑논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을의 높이는 3670m, 내가 오래전부터 꿈꾸던 하늘이 가까운 그런 마을이었다. 주저 없이 하루 묵어 가기로 했다.
 
  그날 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의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 찼다. 밤하늘에서는 수많은 별똥별이 사선을 그었다. 별 사진을 찍고자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의 셔터를 열어 두었다. 그리고 무작정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다. 카메라의 셔터가 열려 있어 그런지 꿈속에서도 설산으로 날아와 박히는 무수한 별똥별을 보았다. 스르르 잠이 깨 밖으로 나가 보니, 맙소사! 보름달이 떠올라 세상이 눈부시게 훤했다. 그리고 달빛 속에서 안나푸르나 여신의 나지막한 숨소리가 들려 왔다.
 
 
  쏘롱 라를 넘으면 황량한 티베트 풍경
 
  게루마을에서 안나푸르나 여신을 만난 덕분인지 다시 트레킹은 순조로웠다. 브라가와 야크카르카에서 각각 하룻밤을 보내고, 쏘롱 라의 베이스캠프 격인 하이캠프에 묵었다. 하이캠프는 고도가 무려 4800m다. 숨쉬기가 약간 불편하고 밤이 되자 머리도 띵했다. 이것이 고소 증세다. 심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지만, 안나푸르나 라운딩은 조금씩 고도를 높이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음 날 오전 5시에 하이캠프를 출발했다. 오전 11시를 넘으면 쏘롱 라에 바람이 강하기에 보통 트레커들은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어둠 속에서 해드랜턴을 켜고 걷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처럼 괴롭다. 강한 바람과 추위는 몸을 얼리고 숨이 차 다리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며 순간 세상이 밝아지면서 온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순백의 부드러운 언덕이 눈에 들어오고, 쏘롱 라가 가까워지며 웅장한 설산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곳으로 한 발짝 걸어가는 길은 황홀해진다. 시나브로 쏘롱 라 정상. 그곳에 선 사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쏘롱 라 푯말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푯말 뒤로 반대편인 묵티나트 히말라야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쏘롱 라를 넘어가면서 또 황홀했다. 순백의 설산 위로 사람들이 지나간 곳에 오솔길이 나 있었다. 내려갈수록 설산 아래의 황량한 풍경들이 나타났다. 드넓은 분지에 설산과 사막 같은 풍경이 어우러져 오묘한 빛을 내뿜는다. 그동안 마낭에서 보아 온 풍경과는 영 딴판이다. 이것은 쏘롱 라를 넘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축복이다. 묵티나트가 보이는 언덕에서 묵티나트 마을과 곰파가 나타나고, 그 뒤로 다울라기리와 묵티나트 히말라야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날 밤은 묵티나트의 로지에서 거나하게 파티를 열었다.
 
  다음 날, 길을 걷는데 혹독한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것 같다. 땅은 눈이 녹아 질퍽했지만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고, 하산길 내내 티베트풍의 황량함과 설산의 풍요로움이 어울린 산은 연한 화장을 한 듯 고왔다. 마르파와 깔로빠니에서 각각 하룻밤씩 묵고 따또빠니에 도착하면서 라운딩은 마지막 밤을 맞는다. 다음 날 베니로 가면 라운딩은 마무리된다. 따또빠니에서의 깊은 밤, 먼 길 떠나는 노새와 당나귀의 방울소리, 그리고 휘~ 몰이꾼의 긴 휘파람 소리가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 안나푸르나 라운딩 가이드
 
  라운딩은 보통 14일 잡는다. 베시사하르를 출발해 부블레~샹제~다라빠니~차메~아랫피상~마낭~야크카르카~하이캠프~묵티나트~마르파~깔로빠니~따또빠니를 거쳐 포카라로 돌아온다. 6일째 마낭에 도착, 하루를 쉬고 10일째에 대망의 쏘롱 라(5416m)를 넘는다. 쏘롱 라만 넘으면 트레킹은 어려움이 없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여름철 몬순이 있기에 이때를 제외하고 모두 가능하다. 10~11월이 가장 좋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카트만두와 포카라의 안나푸르나보존계획(ACAP) 사무소에서 받을 수 있다. 트레킹을 할 때는 1일 지출하는 비용을 최저 10달러, 최고 15달러로 잡는다. 가이드는 1일 15달러, 포터는 10달러 선에서 구할 수 있다.
 
 
  ● 교통과 숙소
 
  겨울철에는 대한항공에서 네팔 직항편을 운행한다. 직항이 없을 때는 방콕을 경유하는 타이항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면 택시를 타고 여행자 거리인 타멜로 간다. 타멜의 숙소는 3~100달러까지 천차만별이지만, 15~20달러면 좋은 숙소를 구할 수 있다. 성수기에는 트윈룸이 15달러인 티벳게스트하우스(tibetguesthouse.com)를 추천한다. 안나푸르나 지역의 거점 도시인 포카라에서는 여행자 거리인 레이크사이드로 간다. 이곳은 숙박비가 매우 저렴하여 200~300루피면 좋은 방을 구할 수 있다. 트레킹 중에는 노지에서 숙식을 해결하기에 식량과 텐트가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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