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ace G. Underwood (원두우 元杜尤) 선교사 ②

Horace G. Unerwood, July. 19, 1859 - Oct. 12, 1916 (Entering Korea in 1885)

 

언더우드 선교사는 어학에 관심이 많아 다방면의 사전편찬을 주도했다. ‘한·영문법’이란 책을 출간하였는데 첫 부분은 문법 주석이었고, 둘째 부분은 영어를 조선말로 번역한 것으로 도합 총 425면이었다. 이 책은 1914년에 개정되어 사용되었다. 두번째 책은 1890년 요코하마에서 간행된 ‘한어자전’이었다. 처음 조선에 부임하였을 때 사전의 필요를 절실히 느낀 그는 5년여 동안 단어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첫째부는 게일(James S. Gale)의 도움과 한불자전(韓佛字典) 그리고 어학선생 송순용의 도움을 받아 한영부(韓英部)로, 둘째부는 헐버트(Homer B. Hulbert)의 도움을 받아 영한부(英韓部)로 편찬하였다.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는 입국 1년 뒤 ‘마가복음’의 첫 임시 번역본을 간행하였다.

1887년 일본 방문에서 헵번 박사로부터 성서위원회 조직을 제안받고, 2월 7일 번역의 감수를 위한 위원회 구성을 합의하고 4월 11일 위원회의 임시 헌장과 세칙을 통과시켜 상임 성서위원회, 번역위원회, 수정위원회를 두었다.

이때 감리교회의 아펜젤러와 스크랜튼, 장로교회의 언더우드 선교사와 헤론(1890년 헤론 사망 후 게일이 임명됨)이 번역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888년 조선야소교서회의 조직을 제의, 이듬해 조직되어 언더우드 선교사는 총무로 선출되었고, 1890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번역되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또한 콜레라 퇴치 작업에 힘을 기울이고, 그리스도신문을 발행하였으며, YMCA를 조직하여 이사로 활동하였다. 일본의 교육령에 의하면 교육에 종사하는 자는 일본어를 익혀야 했다.

그리하여 언더우드 선교사는 1916년 1월 초 일본으로 건너가 하루 9시간을 일본어 공부에 매진하였는데, 이런 강행군은 그의 몸을 심히 쇠약하게 하였고, 병이 중하여 그해 3월 조선으로 귀환하였으나 31년 전 조선에 처음 입국했던 같은 달, 그리고 거의 같은 날 인천에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다.


의사의 권고에 따라 9월에 애틀랜틱 시(Atlantic City) 의 병원에 입원, 1916년 10월 12일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조선에서 그렇게도 많은 일을 했던 큰 별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조선과 조선인을 그토록 사랑했던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 개신교회의 장을 연 위대한 선교사였으며, 그의 일생은 조선을 빼놓고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사회와 교회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불타는 선교에의 열의는 물론 사회와 문화 다방면에 걸친 그의 업적은 개화기 풍전등화와 같던 조선의 큰 빛이었고 개화기 조선의 암울했던 현실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와 선교사들은 그 현실을 직시하였고, 그 안에서 복음을 효과적으로 증거하기위해 모든 힘을 쏟았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
2019년 6월 28일 미주 중앙일보에 한국교회에 잘 알려진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가 허구이니 이 기도문을 더 이상 사용하면 안된다는 UCLA 옥성득 교수의 주장이 실렸었다. 그의 주장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은 1984년 정연희 작가가 지은 소설 ‘양화진’에 나오는 작문과 꼭 같다며 작가 정연희씨가 상상으로 쓴 허구의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둘째, 언더우드 선교사의 후손들이 그 기도문에 대하여 금시초문이란 것이다. 후손도 모르는 기도문이기에 더 이상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서울 새문안 교회 설립 120주년을 맞이하여 위의 기도문을 놓고 아마도 고민을 많이 했나보다. 그래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새문안 교회 관계자가 호주에 거주하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주 며느리 Dorothy Underwood(한국이름 원성희)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그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I read your email about the prayer which is supposed to be the one which the first missionary Underwood, Won Du Oo Moksa, was supposed to have prayed when he first arrived in Korea. Like you, and others with whom you have spoken, I believe it to be a legend regarding Dr Underwood. Won Il Han Changno, also, told me, when I asked him about it, that he had never heard of it before, and had never seen it and its special meaning (naeyong) until very recent times. He had no idea where it originated, but he did not think it was wise to get up in a meeting or church service when it was used to say that it was not something which Won Du Oo Moksa had actually prayed. Because - who knows? - it just might be true, even though, in the family, they had just not known anything about it.

 

비록 공개적으로 언더우드 목사의 기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피해달라는 당부를 덧붙이기는 했지만 언더우드 목사의 후손들은 결국 모르는 일이라고 답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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