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메도우에서 베얄 캠프로 가는 길. 흰 눈이 덮인 낭가파르바트가 압도적인 산세로 치솟았다. 초록 숲과 흰 산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파키스탄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홀로 야영 배낭을 짊어지고, 걷고 싶은 대로 걷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눕고 싶은 곳에 텐트를 치고 머물렀던 기존의 자유로운 여행과 달리, 짜인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단체 투어가 불편할 것 같았다.

게다가 여자들에게 자유롭지 못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행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파키스탄 사진 속에서 본 모든 풍경은 “꼭 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남미 페루에서 살칸타이 트레킹을 할 때, 여행사를 통해 단체 투어를 한 적 있었지만, 멤버 대부분 외국인이었고, 자유로운 스케줄이었기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보다 연배가 높은 우리나라 분들과 함께라 자유분방한 나의 여행 패턴이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파키스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슬라마바드Islamabad에서 칠라스Chilas로 가는 길은 길고 지루했지만, 여행에 익숙해 10시간 이내의 이동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나를 제외한 모두가 네팔 여행의 베테랑들이었다. 몇 년 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과 3패스pass서킷을 한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단체투어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구석구석 네팔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지프가 지나는 길은 험하고 위험했으며, 나무 한 그루 없는 바위산과 흙산은 생물 존재가 의심스러운 화성처럼 삭막하면서 멋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지프는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차 안에 싸늘한 기운이 도는가 싶더니, 차가 멈췄다. 일대에서 제일 높은 해발 4,175m의 바부사르탑Babusar Top에 도착한 것이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길이 끊긴다는 이 고개에 내려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고산여행을 전문으로 했던 나는 차에서 내려 씩씩하게 탑까지 걸어갔지만, 자만은 현기증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결국 걸음을 멈춰야 했다.
고산증에는 어떤 방심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컨디션이 되돌아왔고, 지프에 올라탔다. 해가 지고 밤이 되어서야 칠라스에 도착했다.



사복을 입은 무장 경찰이 트레킹팀마다 동행하도록 되어 있다. 항상 총을 지니고 팀원들을 경호 해준다.


요정의 숲, 페리메도우
다음날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됐다. 우리를 실은 차량은 라이콧브리지로Raikot Bridge로 이동했고, 그곳에는 페리메도우Fairy Meadow(3,300m)까지 데려다 줄 지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한국에서 온 6명의 트레킹 멤버와 현지 가이드를 포함한 스태프들이 두 대의 지프에 나눠 타자, 방역이라도 하듯 먼지를 뿌옇게 날리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픈된 지프 안으로 몰려들어오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버프에 의존한 채 내키지 않는 숨을 쉬었다.
거대한 민둥산을 끼고 돌자 말로만 듣던 위험천만한 절벽 곡예길로 들어섰다. 겨우 차량 한 대 지나갈 듯한 아슬아슬한 길 위로 지프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달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눈을 질끈 감았을 텐데, 왠지 모를 호기심에 난간 밖으로 몸을 내밀어 보았다. 바퀴는 20㎝ 남짓의 공간을 두고 절벽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제야 몸이 움츠러들면서 나에게 허락된 차 안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피신한 채, 먼 산을 바라보며 지프가 목적지에 멈춰 서기를 바랐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의 파키스탄 사람들은 하루의 피로를 춤과 노래로 달랜다.

절벽의 끝 타토마을Tato village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목조 건물 안으로 들어가 스태프가 내주는 향긋한 차를 마셨다. 교통, 식사, 차까지 모든 것을 챙겨 주는 스태프가 있어 편했지만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비옷을 입고 페리메도우로 향했다. 곳곳에 토사가 흘러내린 흔적이 있어 비에 축축해진 길의 안쪽으로 붙어 걸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뒤쳐지는 사람이 속출했다. 비로소 고도에 익숙해진 필자는 배낭이 가벼워서 재빨리 숙소에 도착했다.
 ‘요정의 숲’이라는 페리메도우는 이름에 걸맞게 황량한 산맥 속에서도, 은밀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풍성한 숲과 산장은 먼 길을 올라온 트레커들의 쉼터로 안성맞춤이었다. 축축하게 젖은 옷을 벗어 말리고, 산책을 했다.

군데군데 설치된 텐트를 보니, 벌써 야생의 낭만이 그리웠다. 오후가 되자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쿡(요리사)이 어떤 요리를 준비하는지 궁금했지만, 줄곧 차파티Chapati(밀가루 반죽을 둥글고 얇게 밀어 구운 빵)와 닭고기 카레 요리가 나왔기에 새로울 것이 없었다. 페리메도우의 밤은 시끌벅적했다.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파키스탄 사람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자정이 넘도록 가무를 즐겼고, 그들이 흩어진 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헤를리히코프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 현지 가이드는 오랜 기간 이 길을 지난 듯 길에서 만난 현지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전날 비가 내린 덕분에 다음날 아침은 싱그럽고 상쾌했다.
좋은 컨디션으로 히말라야 14좌 중 9번째로 높은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의 베얄캠프Beyal Camp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중국인 관광객들이 IS 테러범들에게 사살 당한 이후부터 무장한 현지 경찰이 동행한다고 한다. 하얀 수염에 인자한 미소를 짓는 왜소해 보이는 경찰의 모습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트레킹 내내 멤버들의 안전을 위해 앞뒤를 오가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그의 모습에 믿음이 생겼다.

베얄캠프(3,400m)는 야생화가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초원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 야생화 초원이 저 멀리 사납게 우뚝 서있는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걷는 이들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올드 베이스캠프Old BC는 더 올라가야 했지만, 이 트레킹의 목적은 빙하 트레킹을 위한 몸 풀기라 다시 페리메도우로 돌아갔다.


‘요정의 숲’이라고도 불리는 페리메도우. 이곳을 둘러싼 만년설산의 정기를 받은 듯 나무들이 시원하게 뻗었다.


소름끼치게 무서운 낭가파르바트의 위용
다음 목적지는 낭가파르바트 정상으로 향하는 가장 험준한 루트인 루팔 베이스캠프Rupal BC다.
경사 68°에 4,500m 높이의 루팔벽은 낭가파르바트를 ‘죽음의 산’이란 별명을 갖게 만든 코스이기도 하다.

라이콧브리지에서 차로 꼬박 반나절을 고지대로 이동해서야 민둥산 자락에 펼쳐진 초지에 조성된 타리싱Tarishing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의 일상인 양 우리가 도착하자 온 동네 남자들이 몰려들어 우리를 구경했다.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이곳 여자들도 얼굴을 가린 채 논으로 밭으로 농사일을 하러 나가고, 남자들은 포터 일거리를 찾기 위해 몰려든 것이었다.

숙소는 낭가파르바트가 잘 보이는 2층이었다. 구름이 살짝 걸쳐 있었지만 웅장한 자태를 숨길 수 없었다. 페리메도우보다는 낭가파르바트를 좀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루팔 베이스캠프가 더욱 기대되었다.


베얄캠프로 가는 길목의 식당 풍경. 손님을 기다리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지인들.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짐을 꾸렸다.
식사 준비를 알리는 스태프를 따라 내려갔다. 어김없이 닭고기 요리와 차파티가 차려져 있었고, 식사를 하는 동안 포터들과 스태프들은 짐을 챙기고 있었다. 필요한 것만 간단하게 챙겨 작은 배낭을 메고, 가이드를 따라 길을 나섰다.

아침이라 등굣길의 아이들이 많았다. 남자 아이들은 호기심과 장난기 어린 눈으로 신기한 듯 쳐다봤지만, 여자 아이들은 얼굴을 가린 채 수줍게 도망치듯 멀리 떨어져 걸었다.
여자 아이들의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가이드의 주의에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가진 귀여운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마을에서 떨어져 외딴 곳에 사는 아이들은 신기한 듯 따라오며 알 수 없는 말을 걸어왔다. 귀여운 아이들에게 가지고 있던 볼펜을 선물로 건넸다.

헤를리히코프BC(3,500m)로 가는 길은 베얄캠프보다 여유로웠다. 위험천만한 절벽 대신 한가로운 마을과 야생화가 만발한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베이스캠프에 가까워질수록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의 거대한 낭가파르바트가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점심을 먹은 후 낭가파르바트 전망대를 갈 예정이었지만, 시간이 남아 근처를 돌아 볼 요량으로 산책을 나섰다. 야영지는 낭가파르바트를 마주한 채, 양 옆으로 산과 야생화가 덮인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언덕 너머에 어떤 풍경이 있는지 궁금했다. 턱없이 낮아 보였던 언덕을 오르는 데는 한참이나 걸렸다


타리싱 마을에서 바라본 낭가파르바트 연봉. 8,000m대 고산의 힘이 서려 있다.


그 끝에 올라서자 아슬아슬한 절벽이었고, 차가운 공기가 솟구쳐 올라왔다. 눈앞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광활한 빙퇴석 지형이 펼쳐져 있었다. 오랜 시간 침식과 퇴적을 반복해 온 빙하는 깊고 길게 파인 골짜기를 이루며 낭가파르바트로 이어져 있었다. 마치 로보트 태권V의 숨겨진 기지라도 되는 듯 인위적인 지형은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절벽 아래로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그대로 낭가파르바트 전망대까지 가고 싶었지만, 식사 시간임을 알리는 스태프의 고함 소리에 야영지로 돌아갔다.

식사 후 본격적인 트레킹을 위해 물과 우모복을 챙겨 넣은 작은 배낭을 메고 가이드를 따라 나섰다. 구름에 숨어 좀처럼 온전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던 성난 낭가파르바트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출발했다. 초원을 따라 이어진 편한 길이 있지만, 식전에 보았던 빙퇴석 골짜기의 끝을 보기 위해 다시 언덕 위로 올라갔다.

절벽의 흙이 깎이면서 불규칙하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길이었다.
빙하와 초원의 극과 극이라 할 만큼 다른 풍경을 보는 재미까지 더해져 힘든 줄도 모른 채 낭가파르바트 전망대에 도착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낭가파르바트는 인간의 접근을 불허하듯 줄곧 비를 뿌리고 있었다.

우리는 우의를 챙겨 입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전망대에 도착했지만, 그 아래로 펼쳐진 빙하 위를 걷고 싶었다. 가이드에게 부탁하자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대신 절대 단독행동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비 때문에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은 염소와 소를 몰며 농사일을 하지만, 남자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로 길가에 앉아 게임을 즐기거나 담소를 나눈다.

빙하에 다가가자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크레바스가 나타났다. 가이드를 따라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굉음이 들려왔고, 저편의 검은 절벽 위에서 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곳의 많은 눈사태 중에서는 작은 눈사태였지만, 울려 퍼지는 소리로 보아, 어마어마한 규모일 것으로 추측되었다.

더 이상 전진하기엔 위험하다는 생각에 걸음을 멈추자 가이드도 돌아가자는 사인을 보내며 걸음을 돌렸다.
남미에서 해발 5,000~6,000m의 작은 설산을 몇 번 등반했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로 군림하는 낭가파르바트의 위엄이 소름끼치게 무서워지는 순간이었다. 이곳을 오르는 산악인들은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정상에 이르는지 새삼 존경심이 우러났다. 전망대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이미 돌아갔고, 안락한 초원길을 따라 하산했다.

오후 시간은 팀원들과 함께 여행 이야기를 하며 보냈다. 쌀쌀해진 기온에 텐트로 들어가려는데, 스태프들이 캠프파이어를 하자며 불렀다. 현지인들은 각자 타악기로 쓸 물건을 준비해 놓고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페리메도우 산장의 요리사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차파티를 굽고 있다.


노래가 시작되고, 능숙한 손짓으로 몸을 움직이며 두 명의 사내가 가운데로 나와 춤을 추었다.
한 번 듣고 각인된 페리메도우에서의 노래와 같은 음율의 노래가 이어졌다.
모닥불의 혼이 투영된 듯 붉게 빛나는 두 댄서의 춤사위는 딱딱 끊어지면서도 부드럽게 다음 동작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빠른 선율의 밀양 아리랑이 떠올랐다.

다음날 새벽, 낭가파르바트는 여전히 구름을 머금고 있었지만, 빼꼼 머리를 내놓고 있었다.
전날 보았던 검은 절벽과는 다르게 평화로워 보였다. 많은 산악인들이 탐낼 만한 정상이었다.
낭가파르바트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뒤를 돌아보며 다시 타리싱으로 향했다.


낭가파르바트가 토해낸 거친 빙하의 크레바스 위를 걷는 스릴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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