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사람을 물었습니다. 걱정이 많이 되긴 하지만 그리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람이 개를 물면 이 때는 좀 놀라운 이야기가 됩니다. 똑같은 행동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집니다. 어린 아이가 걸음마로 걷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걸음마로 걷는다면 이는 아주 황당한 일이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새신자나 초신자가 신앙적으로 목사님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장성한 신앙인이 평생 자립적인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고 만사에 목사님을 의존하려 한다면 이건 다분히 문제가 됩니다.

목사직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장로'의 역활을 하는 매우 중요한 직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적으로 교인들이 지나치게 담임목사에게 의존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목사의 고유 영역이 아닌 교회 사업, 조직, 관리, 재정, 행사, 건축 등 모든 사역에 목사를 깊숙히 개입시킵니다. 목사가 무슨 초인이나 만능연기자도 아니건만 매사에 목사님을 찾습니다.

교회에선 본래 그런가 보다?

이는 비단 교회 일뿐만이 아닙니다. 극히 개인적인 일에도 걸핏하면 목사님을 찾습니다. 많은 교인들은 돌, 생일, 승진, 입학, 취업, 개업, 그리고 이사 등의 크고작은 일에 자주 목사님을 초대합니다. 심지어 가벼운 접촉의 교통 사고가 나도 목사님을 부르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이를 무조건 나쁘게 볼 일은 아닙니다. 그만큼 목사님을 가깝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 의존 신앙생활이 정녕 심각한 것은 목회자가 정도를 떠나 은근히 사심을 품고 있을 경우에 발생합니다. 일부 그릇된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순진한 무속적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종교적 야망과 사욕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상의 삶보다 예배를 우선적으로 강조하여 교인들의 생활 영역을 가능한 교회 안에 가둡니다. 신약 교회에서는 먼저 삶이 제사가 되고 예배가 되어야 옳건만, 도리어 '예배의 제사화'에 힘을 쏟습니다. 제물을 열심히 바치고 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거룩한 예배가 교묘히 변질하여 신도 동원과 돈 모으기에 이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번에 제사를 이루셨건만,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매주 '기복적 제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주일 성수를 명분으로 하여 '교회 중심' 신앙 생활을 유도합니다. 성경을 인용하여 "죽도록 충성하라" 말하고 신도들 위에 왕처럼 군림합니다. 공교회를 담임목사 맘대로 주무르는 것이지요. 결국 겸비한 종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아주 교활하고 교만한 상전으로 변신합니다. 아마 한국교회 내의 변절한 목사들보다 더 방자하고 위선적인 직분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교회에서의 이와 같은 바리새적 제사장 행세는 그저 '무당 영업'을 의미할 뿐입니다. 이른바 '성직의 권력화', '신도의 무속화', 그리고 '교회의 사유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들이 가능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인들의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성경과 신학과 교회 역사를 깊히 알지 못 합니다. 따라서 담임목사를 가톨릭의 사제처럼 생각하거나 교회의 최고 경영자라고 크게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희안하게도 영적인 문제로만 오면 인생들이 한결같이 우둔해져서 그 똑똑하던 대학교수나 판사나 장관들도 다 '그 나물에 그 밥'이 됩니다. 교회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상식적인 사고와 정상적인 판단이 '종교라는 틀'의 강력한 마약 앞에서 갑자기 마비라도 되나 봅니다. 아무튼 그 덕분에 변질된 목회자들이 신도들을 우민화하고 교조화하기란 실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본래 '교조화'란 전제국가에서 독재자가 세운 사상이나 원리 원칙을 국민들의 여론이나 논리적 비판없이 무조건 따르도록 통제하는 기만적 통치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고루한 수법을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아주 맛있게 애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담임목사에게 독점적으로 주어진 막강한 설교권이 이런 세뇌를 가능케 해주는 주범입니다. 물론 이는 필자가 늘 중대형 교회의 '공동 목회제'를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목회자들의 설교권을 분산하여 목회 독재를 차단하고 신앙적 편식과 독단을 피하며 건강한 균형을 이루자는 말이지요.

하여튼 어떤 교인들은 목사가 무슨 억지를 부려도 "교회에선 그게 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쉽게 넘어갑니다. 마치 무당에게 굿을 하거나 점을 치면 돈을 내야 하고, 사원에 가면 돈을 바치는 것이 일반적 절차인 것처럼 교회에 가면 목사의 말을 따르고 돈을 바쳐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 결과 심한 경우 어느 목사가 교인들 몰래 교회돈을 제 마음대로 써도 그게 불법이며 큰 범죄인 사실을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 교회 부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많은 교인들의 이런 종교적 무지와 무속적 의존 심리에 기인합니다. 매사에 목사를 찾고 목사를 앞세우다 보니 그게 그만 권력이 되고 우상이 된 것입니다.

평생 걸음마 신앙

얼마 전 근처 교회의 나이드신 권사님 한 분이 필자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집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저 구석에 있는 큰 나무는 즉시 자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첨에는 그저 환경학적 관점에서 하신 말씀으로 생각했습니다. 헌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 나무의 기세가 너무 강해서 집안이 그 기운에 눌려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게 교회 생활을 오래하신 권사님이 하실 말씀일까요. 비단 이분만이 아닙니다. 예수도 믿고 미신도 꾸준히 믿는 분들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아주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예수님도 그저 여러 좋은 신앙 대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반 교인들 중에는 성경이나 기독교 진리를 정확히 알지 못 하는 경우가 흔하고, 설사 알더라도 그 지식을 실제 삶에 흡수하고 적용하는 능력이 크게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복을 주기만 한다면 공자든, 무당이든, 점쟁이든, 부처든, 마호멧이든, 그리고 예수든 그다지 가리지 않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점치러 오는 사람들 중에 약 삼분의 일이 기독교인이다"라는 어느 점술가의 증언이 그리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바른 목사라면 이런 무속적 신도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바르게 교정하고 고쳐주어야 옳건만, 도리어 이를 이용하고 부추겨 개신교를 온통 '돈 내고 복 받는 무당 종교'로 만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저 목사 말 잘 듣고 만사형통하여 고작 헌금 잘하는 교인이 되라는 것이지요.

필자가 하고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단순합니다. '교인들 중에는 성경과 진리에는 어두운 반면 무속적이며 기복적인 분들이 제법 많고, 상당수 개신교 목회자들은 이를 악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단과 사이비 교회의 지도자들은 거의 다 이런 부류들이고, 요즘은 많은 주류 교회들마저 그 길을 열심히 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선교와 전도와 교회당 건축과 복음의 확장을 명분으로 교회를 대형화한 목사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방언과 입신과 치유를 미끼로 하여 큰 교회를 세운 자들도 많습니다. 정말 특이한 점은 그동안 '은사 운동' 또는 '성령 운동'을 빙자하여 크게 성공(?)한 목사들 중에 그 사역의 순수성을 끝까지 제대로 유지한 자가 아주 드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 대부분이 교회를 크게 키운 후에는 거의 예외없이 교회돈을 유용하거나 횡령하여 수십 억 또는 수백 억 자산의 '종교 귀족'들이 되었습니다.

콩 심은 데에 팥이 날 리가 없는 법입니다. 근자에 이들의 밑천이 갈수록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도적이 분명한 일부 유명 목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겉으로는 설교를 청산유수로 잘 하지만, 뒤로는 거짓과 기만과 위선과 탐욕이 가득한 인생들입니다. 상식대로 한다면 모두 감방으로 직행해야 할 군상들이 '도적질한 교권'과 '명예훼손법'과 '맹신도'들의 비호 뒤에 숨어서 도리어 교인들에게 호령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뒤로는 횡령, 표절, 성추행, 세습, 그리고 성직매매 등 온갖 부정을 다 저지르고도 돈과 권력을 동원하여 세상 법정에서 '무죄 판결'이나 '집행 유예'가 나왔다고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대형 교회의 비리 목회자들, 이게 바로 한국교회의 적나라한 민낯이 아닌가요. 세상을 심판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알량한 심판을 받고 나서 아주 좋다고 희희덕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그 저변에는 근본적으로 '성도의 미성숙'이란 난제가 깔려 있습니다. 한 평생 교회를 오락가락하며 직분만 쌓아가면 뭘 합니까. 삶이 변하지 않는데요. 겉모습은 장로요 집사이지만 여전히 기복적이고, 이기적이며, 무병장수와 만수무강만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기독교가 부자들을 위한 안일한 종교로 변질하고 있습니다. 귀족 목사들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돕기는 커녕 항상 부와 권력을 추구하며 기득권층에 줄을 대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교회당의 장식일 뿐이고 돈이 좋고, 명예가 좋고, 권력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위한 사랑과 세상을 향한 제자된 사역은 늘상 표류하고 있습니다. 정작 초신자 시절이나 장로나 집사가 된 지금이나 그저 돈과 세속적 복을 갈망하며 자기 치장과 자기 만족에만 바쁜 '걸음마 신앙'에 머물고 있으니 그게 정말 한심하고 난감한 일이지요. 이는 마치 성인이 되어서도 해마다 돌잔치만 반복하고 있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영혼이 없는 시계추

하지만 성숙한 신자라면 '독립적인 신앙 인격'을 세워가야 마땅합니다. 옆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든지 그것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 말씀의 조명에 따라 목사님의 설교도 검증하고, 장로님의 처신도 검증하고, 교회의 사역도 검증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깊은 내면 속에 있는 믿음의 본질을 수시로 검증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요즘같이 혼탁한 시대에는 어느 목사나 장로가 한마디했다고 무조건 따르는 것은 뜨거운 '순종'이 아니라 그저 경박한 '맹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숙한 신자는 매사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민감하게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내 멋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없는 시계추처럼 교회당만 반복적으로 왕복하지 말고, 자신의 신앙 양심과 판단에 따라 스스로 거룩한 삶을 실천해보자는 말씀입니다.

이는 결코 진실한 목사님들의 귀한 수고와 헌신을 폄하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또는 독불장군이 되어 성도의 교제와 교회 공동체를 경시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필요시 목사님이나 장로님 등 교회 지도자의 신앙적 도움을 받고 조언을 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세 교회가 그 전형적인 예입니다. 당시에는 교황이나 사제만이 성경을 해석하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신도들은 그 뜻도 모르는 원어나 라틴어를 그저 매주 맹목적으로 반복해서 따라 읊었을 뿐입니다. 그 결과 수많은 영혼들이 부패한 성직자들과 함께 나란히 지옥행 완행열차에 탑승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개혁 교회의 목사는 교회의 지도자이지 지배자가 아닙니다. 목사는 설교자이지 제사장이 아닙니다. 목사는 사역자이지 사장이 아닙니다. 목사는 종이지 상전이 아닙니다. 목사는 가르치는 교사이지 굿하고 점치는 무당이 아닙니다.

목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사님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필히 금해야 할 일입니다. 누구도 우리 신앙의 주관자나 지배자가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설사 선지자나 사도는 물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안 됩니다. 견실한 신앙인이라면 그 어떤 여건 속에서라도 우리 신앙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만을 따르는 신앙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계에 그 이름이 쟁쟁한 조용기, 김홍도, 김삼환, 곽선희, 길자연, 전광훈, 홍재철, 장효희, 석원태, 김성관, 전병욱, 정삼지, 이문장, 최종천, 황형택, 윤대영, 방수성, 김규동, 그리고 오정현 등 그 어느 목사라도 함부로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신앙적 자립과 성숙에 힘쓰라는 말입니다. 아울러 유명과 오명과 악명이 혼재된 어떤 목사들의 현란한 설교에 쉽게 정신줄을 놓지 말고, 그들의 모순적인 호화 생활과 종교적 사기 행각도 좀 주의깊게 관찰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소중한 신앙을 그 누구에게라도 함부로 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결론은 성경입니다. 신도의 우민화와 교조화는 언제나 성경을 왜곡하는 설교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 신앙을 이루려면 결국은 성경을 옳게 이해하고 바르게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신학자나 목회자만의 전유물은 결단코 아닙니다. 세리와 어부와 기생도 변화시킨 그 말씀을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이해 못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스스로 성경을 읽고 소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맹신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혼탁한 시대에는 남이 던져주는 떡만 마냥 받아 먹으려 하면 곤란합니다. 이런 습성이 체질화하면 맹목적으로 돈을 바치고 몸을 바치는 '영적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광야에서도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성숙한 제자들은 교회 안에서 성경이 말하지 않는 잡된 사상을 감히 퍼트리고 가르치는 자들을 엄히 응징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우리에게 '특별계시'인 성경을 주신 이유는 매우 명백합니다. 세상 권력을 가진 자나 도울 힘이 없는 인생들을 의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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