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배고픈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곳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인천 화수동에 2003년 4월 1일 문을 열었습니다. 6년 째가 되어가는 <민들레 국수집>은 기업이나 단체, 정부의 지원을 일체 받지 않고 전국에서 모인 후원자들의 사랑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번이고 <민들레 국수집> 간판을 바라봤습니다. 뒤돌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을까봐 눈을 질끈 감았다 떠봅니다. 강아지 ‘민들레’를 안고 웃는 수사님이 눈동자 가득 들어옵니다. 그제야 제대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2003년 만우절에 문을 연, 거짓말 같은 공간 <민들레 국수집>은 2003년 만우절(4월1일)에 문을 열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으로 여섯 번째 꽃을 피워냈습니다.

10시 인천 화수동. 인천 바닷바람이 점퍼 깊숙이 달려드는 언덕자락에 <민들레 국수집>의 개점 시간입니다.

10시에 연다고 하지만 그 전부터 줄 서 계시는 '손님'들이 많아서 매일 문 여는 시간은 다르답니다. 물론 문 닫는 시간이 5시라고 해서 밥 먹는 손님들을 재촉 하지도 않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포근한 밥 냄새가 풍겨옵니다. 오늘 반찬은 계란프라이, 도라지, 김무침, 어묵조림, 육개장, 상추쌈입니다. 후식으로는 바나나 그리고 피자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배식은 자유, 넓은 접시에 먹고 싶은 만큼 담아가면 됩니다. 마음 속 허기가 찰 때까지 몇 번을 먹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유배식을 하는 것은 노숙자들에게 자발적인 힘을 길러주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배고픔을 해결해야 그 다음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배가 부른 다음에야 일을 할까 공부를 해볼까 하는 2차적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민들레 국수집>에는 '국수'가 없습니다. 처음 식단은 국수였지만, 국수로는 손님들의 배가 부르지 않아 메뉴를 변경했습니다.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배고프지 않는 날이 와서 국수를 내 놓을 수 있게 되길 바라며 가게 이름은 바꾸지 않고 있지요.

11시 6년전 수도생활에서 환속하고, 지금은 '국수집 아저씨'가 된 수사님이 교정사목을 가시는 목․금요일만 빼면 <민들레 국수집>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6년 전 첫 손님이었던 대성씨는 이제 직원으로 가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3평으로 시작한 가게는 18평이 되었지만 작년보다 두 배는 늘어난 손님들은 가게를 꽉 채우고도 남습니다.

봉사자들이 오가는 것도 자유입니다. 정기적으로 오시는 분들 외에 오늘은 외고에서 중국어를 가르치신다는 선생님과 친구 분, <민들레 국수집> 6주년 기사를 보고 찾아오셨다는 분이 함께합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금치를 다듬는데 갑자기 대성씨가 후식인 바나나가 다 떨어졌다고 알려옵니다. “요구르트로 드려도 되겠지요?” 나가는 손님들에게 후식뿐만 아니라 담배를 챙겨드리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12시 한가해진 시간, 봉사자들이 점심을 먹습니다. 투박해진 수사님 손에 시선이 머뭅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노란 꽃을 피우는 민들레가 그 손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게와 주방에는 김남주 시인의 <사랑>이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습니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민들레 국수집>의 운영 방침이라고 합니다.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서울에는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무료 급식소는 많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기다려야 겨우 식권을 받을 수 있거나, 종교를 강요하기도 합니다. 오가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제대로 앉아있지 못하시는 수사님은,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와도 이름을 부르며 반겨주십니다. 3~4백 명 이나 되는 손님들의 이름은 물론 소소한 가정사까지 알고 계시죠. 여기서는 밥만 먹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수사님의 따뜻한 사랑과 전국에서 <민들레 국수집>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얹어지기 때문입니다. 손님들이 멀고 먼 이곳까지 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13시 이곳은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책을 내놓는 정부의 보조금과 부자들이 생색내며 내는 기부금을 받지 않습니다.

후원회 조직과 예산확보 프로그램도 없습니다. 그런 <민들레 국수집>이 6년을 어떻게 버텼을까요?

“남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주는 게 ‘사랑’이죠. 사랑하는 사람에겐 아끼는 것을 주고 싶잖아요? 움켜쥐고 있으면 썩기 마련이죠. 이렇게 순환되는 나눔 속에서 새로운 사랑이 자랍니다.”

밥을 먹으러 들렸던 마을 할머니에게 한 포대,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 집에 한 포대 쌀을 나누어 주자마자 택배 버스가 <민들레 국수집> 앞에 멈춰섭니다. 전남에서 누군가 보내온 쌀이 도착합니다.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거짓말 같은 사랑'이 여기서는 흔한 일입니다.

길가다 과자 몇 박스를 놓고 가는 분의 뒷모습, 오늘 번 돈으로 봉사자들 음료수를 사온 할머니의 발걸음, 일 년간 월요일마다 점심을 굶고 모은 돈을 가져오신 집배원 아저씨의 수줍은 웃음이 <민들레 국수집>을 지탱해 온 힘이겠죠.

14시 수사님 품에 ‘작은 민들레’가 안겨 옵니다. 가게 앞에 묶인 강아지도 ‘민들레’입니다. 노숙 견이었던 두 강아지를 수사님이 보듬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을 보며 <민들레 국수집>에 오시는 분들도 수사님의 사랑으로 변하길 바래봅니다.

지금 가게 옆의 예전 3평짜리 공간에는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있습니다. 노숙자분들을 위해 안 쓰는 옷을 모아 걸어놓았습니다. 누구든 필요한 옷이 있다면 가져가면 됩니다. 그 외에도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민들레 꿈>도 운영하고 계십니다. “배고파!”하며 <민들레 꿈>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 공부와 경쟁을 강요하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이 가난 속에서 행복한 삶을 찾길 바라는게 수사님의 마음입니다.

15시 반찬이 모자라지 않을까 주방에서는 한 시도 손이 멈추지 않습니다.

마침 구석에서 몇 명의 여고생과 담임선생님이 모여 마늘껍질을 까는 모습이 보입니다. “집에서는 이런 일 절대 안하는데요!”하며 맑게 웃는 여고생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배워갈지 궁금해집니다.

한 발자국만 나가면 자본주의로 물든 치열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아무 무늬 없이 빛바랜 색으로 ‘민들레 국수’라고 쓰여 있는 간판 아래서는 그 경쟁도 비껴갑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오신 예수님을 섬기듯 노숙자들을 섬기는 수사님의 마음이 민들레 홀씨처럼 곳곳으로 퍼져나가길 소망합니다.

짓말을 하는 날, 거짓말 같이 문을 열어,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품고, 거짓말 같이 많은 사랑이 모여, 거짓말 같이 6년을 버텨온 <민들레 국수>. '국수 배달해 달라'는 전화에 죄송하다며 끊더라도 '귀여운 애교'로 넘길 수 있겠죠.

서울에서 먼 길을 온 손님이 “봄 소풍 왔다 간다.”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는 수사님. 앞으로 노숙자들이 밥을 먹은 후에 쉬며 영화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6년보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 중요할 <민들레 국수집>은 늘 비워져 있습니다. 비워져야 새롭게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그곳을 채워주세요. 그 사랑으로 <민들레 국수집>에서 '국수'를 먹을 그 날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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