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초심으로 돌아가
외형보다 선교·구제 주력


LA인근의 대표적 준대형교회로 꼽혔던 삼성장로교회가 새 성전을 매입한 지 10년만에 건물을 포기한다.

이 교회의 신원규 담임목사는 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예배당을 은행에 반납하고, 앞으로 교회 예산을 선교와 구제에 쓰기로 교인들과 결정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교회는 오는 2월에 인근 비영리 단체 건물로 옮겨 렌트 교회로 다시 돌아간다.

이같은 결정은 그간 확장을 고집해온 부작용 때문이다.

1984년에 세워진 이 교회는 지난 99년과 2004년 각각 라하브라시의 본당과 브레아시의 기도원 건물을 차례로 매입하는 등 외적 성장에 치중하다 부채가 쌓여갔다. 성전 헌금에 부담을 느낀 교인들이 떠나면서 10년전까지 1500명이 출석했던 준대형교회는 교인수 350명의 중형교회로 퇴보했다.

운영에는 실패했지만 이 교회가 주목을 받는 것은 그 대처법이다.

신 목사는 교인들에게 “나는 지난 10년간 실패한 목회자였다”며 “내 욕심과 야망에 사로잡혀 성전에만 집착하다가 교회의 몸인 교인들을 잃고 말았다”고 과오를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다.

교인들의 말에 다시 귀를 열었고, 개척교회 시절로 돌아가자는 교인들의 고언을 받아들였다. 정관을 새로 만들어 ‘향후 건물 매입이나 확장을 하지 않고, 매월 렌트비를 5000달러 이상 쓰지 않으며 교인 200명이 추가될 때마다 교회를 독립시켜 재정적 후원을 맡는다’고 결의했다. 세부 정관은 7일 오전 10시 교회에서 교인들과의 공개 좌담회를 통해 외부에 발표할 예정이다.

좌담회는 일반인도 참관할 수 있다.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했던 신 목사는 “다른 목회자들이 내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어려운 결정을 했다.

“올해로 목회 27년째다. 지난 10년간은 회당(성전) 건축만 했다. 내가 욕심을 부렸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교인의 영혼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잊었던 세월이다.”

-90년대 말까지 급성장했던 교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초심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개척 초기 많이 힘들었다. 난 주유소에서 일하고 아내는 바늘공장에 다녔다. 교인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품어주는 목회를 했었다.”

-교회가 어려워진 이유는.

“교회가 커지면서 성도를 챙기기보다 외형적인 면에 더 관심이 가게 되더라. 성전을 사고도 기도원 욕심까지 냈다. 경영이 쉬웠겠나?”

-말못할 고충이 많았을텐데.

“지난 6년간 매달 17만달러씩 융자금을 갚아왔다. 성도들 사정은 어렵고, 건물 에퀴티를 뽑아 페이먼트를 내야할 때도 있었다. 선교와 구제에 쓰여야 할, 교인들의 피땀인 헌금을 은행에 고스란히 주는 꼴이었다.”

-건물 포기 결정을 내린 계기는.

“2009년 8월쯤 하나님의 징계가 오더라. 간이 안 좋아져서 반년 넘게 병상에 누워있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잘 하겠다’고 기도했다. 건강을 되찾고
나서 교인들에게 그 결심을 말했다.”

-교인들 반응은 어땠나.

“개척 교회의 뜨거움을 회복되는 기분이라고 하더라. 10년간 건축의 덫에 갇혀있었는데도 한결같이 나를 따라준 교인들이 고맙다. ”

-가장 반겼던 사람은.

“아내다. 이제서야 남편이 목회자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기뻐했다. 말은 안 했지만 아내도 그동안 목사 남편과 교인들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과정에서 느낀 바가 있다면.
“나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회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성도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조언한다면.

“목회자는 성도의 영혼을 중시해야 한다. 예배의 공간이 부족하다 생각들면 목회자의 그릇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동안 난 그 기본적인 의무를 소홀히했다. ‘성도 몇천명을 주십시오’하고 바라기보다 지금 나를 의지하는 성도의 자녀 한 명 한 명을 가슴에 품는 목회자들이 되시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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