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헌신'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우리가 그 말을 자주 쓰면 쓸수록 그 말의 의미는 자꾸만 더 퇴색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그 말의 참된 뜻을 잘 모르고 있지나 않은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우리 기독교 안에서 말하는 '헌신'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께 나를 바친다는 뜻으로 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너무나도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또한 모든 교리나 그와 관련된 용어들도 추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이 '헌신'이라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너무나도 추상적으로 받아들여서 있으나 마나 한 말이 되어버린 듯하기도 하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므로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헌신은 기껏해야 교회의 성장을 위해 또는 선교를 위해 물질적으로 좀 내어놓는 정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헌신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일이다.

이 '헌신'이라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자주 구약의 제사 때에 바쳐지던 제물을 생각하곤 한다. 그 당시 소나 양이 제물로 바쳐질 때 그것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제사장은 그 제물을 죽이고 또 각을 뜨며 내장을 전부 쏟아내 버리고 불에 태우곤 하였다. 그래야만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이 오늘날에도 교회내에 그대로 존재한다. 그래서 헌신이라는 말을 하면 당연히 우리가 죽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 헌신한다고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는 죽지도 않으면서 죽어야 한다고, 또는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생각만 그럴 뿐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생각도 처음에는 우리의 마음 깊숙히 파고들 정도로 감동적인 생각이었겠지만, 여러 번 횟수가 거듭될수록 우리의 마음은 무디어져 가고, 마침내는 전혀 마음의 감동이나 결단이 없는 상태에서 그저 입으로만 '헌신'을 연방 외쳐대는 그러한 처지로까지 발전하고 만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헌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헌신'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도 없는 일을 시키시는 그런 분인지?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구약 시대의 제물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런 헌신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 헌신을 한 분은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다.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대표로 헌신하신 것이다(롬3:25, 롬5:17-19, 롬6:10). 그리하여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받게 해 주신 것이다. 실제로, 문자 그대로 헌신하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바치신 것이다. 우리 가운데 누가 그런 헌신을 한단 말인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헌신을 할 수 없다.

'헌신'을 강조할 때, 이제 더 이상 '내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러한 일을 입으로만 하자고 외쳐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그런 가식과 위선을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보이지 말아야 한다.

구약 시대에,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제사(제물)를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당분간 덮어두셨다. 그러다가 드디어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용서하시고 더 이상 제사는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히7:27,10:5,10:18). 예수님 그 분이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모든 희생제사를 대신하셨다(히9:26). 이것을 믿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 아닌가? 복음이란 어찌보면,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직접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좋다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헌신' '헌신'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더러 우리의 몸을 내어놓으라고 하시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자주 하는 '주님을 위하여 내 한 몸 헌신하겠다' 하는 말만 해도 그렇다. 과연 우리가 주님을 위할 수 있는가? 그 분은 전지전능하시며 완전하신 분이기에 부족함이 조금도 없는 분이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위함을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고, 또한 피조물인 우리로서는 도저히 그 분을 위해 드릴 수가 없다. 우리가 감히 어떻게 그 분을 위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니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라는 말도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 대신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헌신'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도저히 우리의 공로로나 우리의 헌신으로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드릴 수 없는 존재임을 아시고 그 외아들 예수를 보내주셨다. 그리고는 우리더러 하시는 말씀이 "이제 더 이상 너희가 헌신하겠다고 나서지 말고, 내 외아들 예수의 말을 들어라(행3:22). 그가 나의 노여움을 풀었고, 그를 통해 내가 너를 나에게로 부를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신약의 새언약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헌신이란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점에 주의하지 않고, 그저 막연히 추상적인 '헌신'만을 생각하고는 실제로 우리 몸을 죽여서 하나님 앞에 바치지 못하는 나 자신만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모든 일을 포기하는 수가 많다. 그래서는 안 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바로 참된 헌신이다.

교회에서 헌신을 강조하려면, '너 자신을 죽이라. 네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라. 네 자존심까지도 모두 죽여라' 하는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을 따르라'라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만일 '너 자신을 죽이라'라는 말만 강조했다 하자, 그러면 죽이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죽이고 나면, 남는 게 무엇인가? 죽었는데 무엇이 남겠는가? 물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산다고.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실제 개교회에서는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헌신'을 강조하는 시간에 가서는 '너 자신을 죽이라. 네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라.'에서만 그치고 마는 일이 흔하다. 더 이상 진전이 없다. 그것은 이 '헌신'이라는 말에서 물질적 헌납을 강조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 '헌신'을 너무나도 값싸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만다. 물질적 헌납 정도로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천만에!

우리는 참된 '헌신'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교회의 양적 성장이라는 말도 필요치 않으며, 거창한 선교라는 말도 필요치 않다. 내 곁에 있는 배고픈 작은 소자에게 한 끼 밥을 주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히13:16).(1994.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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