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 코트디부아르를 구한 것은 ‘드록신(드록바의 별명·축구신이라고 해 붙여졌다)’이었다.
후반 17분,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교체 투입된 디디에 드록바(36)는 강력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과, 빠른 돌파를 선보이며 일본 수비수들의 혼을 뺐다.
후반 37분 프리킥, 후반 40분 살로몬 칼루가 내준 패스를 세밀하게 터치하며 왼발 슛을 때렸던 장면은 드록바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드록바 교체 투입후 일본은 2분 간격으로 보니와 제르비뉴에게 동점골과 역전골을 내줬다. 그는 경기장에 나선 것만으로 팀을 추스르고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말 그대로 ‘클래스’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 경기였다.

15일 브라질월드컵 C조 조별리그 첫 경기 일본과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맹활약을 펼친 드록바(앞). AP-뉴시스
15일 브라질월드컵 C조 조별리그 첫 경기 일본과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맹활약을 펼친 드록바(앞). AP-뉴시스


‘검은 예수’ 드록바는 누구?

드록바 별명은 ‘검은 예수’다. 세계 최고 스트라이커이지만 코트디부아르에서 그는 축구를 잘하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전쟁을 멈춘 영웅이자 청소년의 우상이다.

지난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코트디부아르는 북부 이슬람 세력과 남부 기독교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15년여간 갈등과 내전의 아픔을 겪어왔다. 이 기간 5000여명 이상이 숨지고, 12만명이 난민이 됐다. 유엔과 프랑스가 군대를 파견해 혼란을 수습하려 했지만 총성은 그치지 않고 갈등은 심화됐다.

내전이 한창이던 지난 2005년 10월, 드록바는 독일월드컵 티켓을 따낸 뒤 TV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1주일 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드록바의 호소는 정부군과 반군을 감동시켰고 이후 일주일간 실제로 총성이 멈췄다. 드록바는 지난 2011년 정부가 내전을 종식하기 위해 선정한 11명의 화해위원회 멤버기도 하다.

코트디부아르의 상황을 알지 못하던 이들도 드록바를 통해서 나라의 상황에 관심을 갖고 평화 재건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드록바는 “우리 코트디부아르 선수들은 언제 어디서 뛰든지 코트디부아르의 친선 대사 같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한 언론 인터뷰서 말한 적이 있다. 그는 UN 홍보대사를 역임하고, 자선 재단을 세워 학교와 유소년 시설 등을 지원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60억원을 종합병원 설립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축구 실력도 ‘신’의 경지에

드록바의 또 다른 별명 ‘드록신’은 오로지 그의 축구 실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는 소속팀 첼시를 유럽 정상에 올려놓은 스탬포드 브릿지(첼시 홈 구장)의 영웅이자 런던이 사랑하는 축구 스타다.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 등과 함께 그는 ‘첼시’ 구단 상징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2012년 첼시를 떠나 갈라타사라이서 뛰는 드록바가 올 초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챔피언스리그 첼시전에 나서자 경기장 곳곳에는 “Drogba, always in our hearts(드로그바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란 현수막이 걸렸다.

드로그바는 전형적인 타겟형 스트라이커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치열한 경합을 버텨내며, 쉼 없는 움직임을 만들며 수비수를 괴롭히는 것이 그의 장기다. 일본전 승리 역시 그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수비수를 혼란스럽게 하면서 동료 공격수에게 틈을 주는 등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큰 경기에 강했다. EPL내 첼시 경쟁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리버풀 등에겐 그의 존재 자체가 고역이었다. 전력 차가 나지 않는 팀일수록 승리를 위해선 강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골을 넣는 선수가 필요한 것이 현대 축구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첼시에서 뛰면서 341경기에 출전해 157골을 터뜨렸다.
첼시 시절 챔피언스리그 우승 퍼레이드에서 빅 이어를 들고 환호하는 드로그바. 스포츠조선
첼시 시절 챔피언스리그 우승 퍼레이드에서 빅 이어를 들고 환호하는 드로그바. 스포츠조선
첼시에서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2012년 챔피언스리그였다. 이미 EPL 우승, FA컵 우승, 리그 득점왕 등을 경험한 그였지만 그해 부임한 빌라스 보아스 감독 체제에선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처지가 됐다. 자연히 출전 기회가 줄고 교체로 나선 경우가 많았다. 감독과의 불화설, 나이로 인한 기량 쇠퇴 등의 루머도 줄곧 이어졌다.

그는 보아스 감독이 경질되고 디마테오가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주전 스트라이커로서의 입지를 되찾았고 챔피언스리그서 강호들을 격파하는데 선봉이 됐다. 나폴리와 16강 2차전에서 득점을 올리며 1차전 1대3 패배를 4대1로 뒤집는데 앞장섰고,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 1차전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드록바의 백미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이었다. 0대1로 뒤진 후반 43분 극적인 헤딩 동점골을 쏘았다. 또 120분 혈투에서 승부를 가지 못한 채 이어진 승부차기에서는 첼시의 마지막 키커로 나서 우승을 결정하는 승부차기를 성공했다. 그는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었던 때를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 표현했다.

첼시에서 축구 선수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를 누린 그는 중국 상하이 선화서 9개월 활약한 후 챔피언스리그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터키 명문구단 갈라타사라이에서 뛰고 있다. 터키에서는 2시즌 동안 48경기에 나서 18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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