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12년에 그린 서재에서 선 나폴레옹.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12년에 그린 서재에서 선 나폴레옹.
소통의 시대라고 하는데 말문을 어떻게 열까. 상대가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고민은 깊어진다. 이럴 때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미국 경영미디어인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을 19일(현지시간) 소개했다. 핵심을 간추려 본다.

 ◆나폴레옹은 키가 작지 않았다=‘나폴레옹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키 작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열등의식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키는 ‘무려’ 1m70.7㎝나 됐다. 프랑스대혁명 시대 평균 키는 1m67.6㎝ 정도였다. ‘우월한 기럭지(길이)’는 아니었지만 평균 이상은 분명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에서 낙제하지 않았다=스티브 잡스 전기로 유명한 월터 아이작슨의 『아인슈타인의 우주』에는 아인슈타인이 “나는 수학에서 낙제하지 않았다. 15세 이전에 미적분을 마스터했다”고 한 대목이 들어 있다. 그는 17세 때 대수와 기하학에서 최고 등급을 받기도 했다.

 ◆추수감사절은 메이플라워호 청교도들이 시작한 게 아니다=17세기 초 청교도들이 종교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들이 농사 수확을 마친 뒤 자신들의 신에게 감사드리기 시작하면서 추수감사절이 시작됐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16세기 중반 플로리다에 이주한 스페인 사람들이 비슷한 잔치를 이미 즐기고 있었다.

 ◆스페인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스페인독감은 1918년 5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 갔다. 1차 세계대전 사상자 3400만 명보다 많다. 이름과는 달리 독감 발원지는 미궁이다. 현재 남아 있는 증거를 바탕으로 미국 켄터키 하스켈에서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인이 아니었다=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계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사람이었다. 이 왕조는 알렉산더 대왕 이후 이집트를 다스렸다. 대중 앞에서 자신이 이집트 여신인 이시스의 후예처럼 행동하기는 했다.

 ◆소가 등불을 차서 시카고 대화재가 일어난 게 아니다=1871년 대화재는 도심을 송두리째 초토화했다. 수백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도시를 재건하면서 요즘 시카고 마천루가 형성됐다. 지금까지는 오레리란 여성이 기르던 소가 등불을 차서 불이 났다는 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불길은 오레리의 집과 좀 떨어진 한 골목에서 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야구 아버지는 애브너 더블데이가 아니다=남북전쟁 참전 장군인 애브너 더블데이가 1839년 뉴욕 쿠퍼스타운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1938년 미국 의회가 나서 알렉산더 카트라이트란 사람이 현대 야구를 발명한 것으로 인정했다. 카트라이트는 니커보커야구클럽 설립자다.

 ◆피라미드는 유대인 노예들의 작품이 아니다=메나헴 베긴 전 이스라엘 총리가 1977년 이집트를 방문해 유대인 노예들이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요지로 발언해 정설로 굳어졌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이 연구해 보니 피라미드를 지은 사람들은 이집트인이었다.

 ◆바이킹족은 뿔 달린 투구를 쓰지 않았다=뿔 달린 투구를 쓴 바이킹족이 서유럽을 공격하는 모습은 각종 영화 등에서 익숙한 장면이다.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도 뿔 달린 투구를 쓴 바이킹 전사들이 등장한다. 정작 고고학적인 증거는 없다. 스웨덴 화가가 1800년대에 그린 작품에 뿔 달린 투구가 등장하면서 형성된 이미지라고 한다.

 ◆대공황 때 월가에서 연쇄투신은 없었다=1929년 10~12월 사이에 주식투자자들이 연쇄적으로 몸을 던져 숨을 끊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주가 폭락 때마다 방송이 월가 고층 빌딩에 배치되는 이유다. 하지만 대공황 때 주식 폭락으로 스스로 세상을 버린 사람은 4명이었다. 이 가운데 2명이 월가에서 목숨을 버렸고, 그것도 총기 자살이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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