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라크 전쟁에서 진격하는 M113 보병수송장갑차
2004년 이라크 전쟁에서 진격하는 M113 보병수송장갑차

기갑부대가 전쟁의 주역으로 맹활약하기 시작한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현대식 의미의 전차는 그보다 한 세대 전에 탄생하였지만, 그 역할과 위상에 대해서는 전쟁이전까지 설왕설래가 많았다. 독일은 전차를 보병 지원 수단만이 아닌 돌파의 주역으로 삼고자 별도의 제대를 편성하여 집중 운용하였다. 이후 이것은 전투 방식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고 어느덧 전차는 지상전의 왕자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전차는 보병의 지원이 필요한데…


그러나 아무리 전차를 독립적으로 운용한다 하여도 보병의 근접 지원 없이 단독으로 전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보병의 이동 속도에 맞추어 작전을 벌인다면 그것도 전차의 운용 목적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전차 외부에 보병을 태우고 전투를 치르는 방법까지도 등장하였지만 너무 위험하였다. 결론적으로 전차와 보조를 맞추어 보병이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였다.


처음에는 트럭이나 야지 기동력이 좋은 하프트랙(Half Track)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이들 차량이나 여기에 탑승한 보병은 외부 공격에 취약하였다. 따라서 전차와 보조를 맞추어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병을 보호하며 이동 시킬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였다. 바로 보병수송장갑차(APC-Armored Personnel Carrier)였다. 전후에 탄생한 M113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탄생한 대표적인 APC였다.


(좌)부상자 후송용 M113, 2004년 11월 12일, 이라크 팔루자에서 <출처 : 미 육군 /><br />
(우)NASA에서 사용 중인 M113 <출처 : NASA>
(좌)부상자 후송용 M113, 2004년 11월 12일, 이라크 팔루자에서 <출처 : 미 육군>
(우)NASA에서 사용 중인 M113 <출처 : NASA>

아직 정립되지 않은 개념


제2차 세계대전처럼 거대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선에서 APC에 대한 요구가 생긴 것은 필연이었다. 영국의 유니버설 캐리어(Universal Carrier) 같은 장비가 등장하였지만, 사실 궤도식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오픈 탑(Open Top)이어서 탑승한 병력을 보호하기에는 방어력이 형편없었다. 결국 소화기나 수류탄의 공격으로부터 보병을 보호하고 신속히 전선을 이동할 수 있는 APC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나 등장할 수 있었다.


이 분야를 선도하였던 것은 미국이었다. 전쟁 말기인 1944년에 M18 구축전차를 개조하여 24명의 보병이 탑승할 수 있는 M44(실험부호 T16)가 시험 삼아 제작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탄생한 M75가 한국전쟁 말기인 1952년 전선에 투입되어 일부 사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직 APC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느 정도의 무게, 어느 정도의 인원을 탑승하고, 어느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어야 좋은지 몰랐다.


1953년 FMC(Food Machinery Corporation)에서 M75보다 폭을 넓혀 주행 안전성을 높이고 수상 도하가 가능한 새로운 APC인 개발하였는데, 미 육군에서 호평을 받아 M59라는 제식명으로 채택되어 M75를 즉시 대체하였다. FMC는 2차대전 중, 미 해병대용 상륙돌격장갑차인 LVT(Landing Vehicle Tracked)를 양산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접목하여 성능을 대폭 개량한 APC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기관총 사격 훈련을 하고 있는 M113
기관총 사격 훈련을 하고 있는 M113

무게에 대한 딜레마


M59는 보병 탑승 공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상자(Box) 형 차체를 도입했는데, LVT처럼 수밀(水密)식으로 제작되어 하천 도하가 가능하였다. 더불어 차체 전면에 파워팩을 비롯한 기계 설비를 탑재하였고 후방으로 유압식 램프 도어를 갖추어 보병의 신속한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M59도 미국의 새로운 전쟁 전략을 충족하는데 미흡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점이었다.


냉전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러야 할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다. 이에 항공기로 부대를 신속 전개하는 전략을 연구하였는데, 장갑차의 무게가 가벼울수록 좋은 것은 당연하였다. 그런데 기갑 장비의 성능과 관련하여 무게는 상당히 커다란 변수다. 방어력을 높이면 무게가 늘어나 기동력이 저하되지만 기동력을 염두에 두어 무게를 줄이면 방어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차와 보조를 맞추어야 하지만 장갑차는 위력 수색이나 전초 개척을 대비하여 당연히 전차보다 기동성이 좋아야 했다. 미군은 M59 정도의 방어력이면 APC로 충분하다고 보았지만 20톤에 가까운 무게는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보다 가벼우면서도 방어력은 동일한 새로운 APC라면 항공기나 선박을 이용한 원거리 전략 기동은 물론 전투 지역에서의 전술 기동에서도 좋다고 결론 내렸다.


(좌)M113에 탔던 보병들이 전투를 위해 신속 하차하는 모습<br />
(우)보병 탑승 구역
(좌)M113에 탔던 보병들이 전투를 위해 신속 하차하는 모습
(우)보병 탑승 구역

물려받은 장점과 개선된 성능


이에 FMC는 카이저(Kaiser)사에서 만든 알루미늄 합금으로 차체를 만든 T113과 철강재이지만 기존 장갑보다 얇은 새로운 강판으로 제작한 T117을 새로운 APC 후보로 미군 당국에 제안하였다. 이 두 시제품은 M59의 기본 장점은 그대로 따랐지만 장갑 재질을 바꿔 무게를 대폭 줄인 형태였다. 더불어 현가장치도 강화되어 기동성이 더욱 향상되었으며 양산에 들어갈 경우 M59보다 저렴하게 만들 수 있었다.


실험 끝에 미군 당국은 T113을 차세대 APC로 낙점하여 1956년 5월 FMC와 개발 계약을 체결하였다. 1959년 4월 M113이라는 정식 이름을 부여하였고 1960년 1월부터 본격 양산되었다. M113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차체를 제작한 최초의 장갑차량으로 전면 왼쪽에 조종석, 우측에 기관실을 배치하였다. 차체 뒤에는 완전 무장한 11명의 보병을 탑승시킬 수 있었고 12.7mm M2 중기관총으로 자체 무장을 하였다.


처음에는 209마력의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였는데, 연비가 나쁘고 피탄 되었을 때 화재가 발생하여 M113A1부터는 215마력 디젤 엔진으로 바뀌었다. 전진 6단 후진 1단의 자동변속기를 장착하여 효율을 높였고 M59보다 약 8톤 정도 가벼워 수상주행 능력도 대폭 향상되었다. 엄밀히 말해 장갑차를 이용한 도하는 교전 지역에서 함부로 벌일 수 없는 행위지만 안전지대라면 공병의 도움을 적게 받는 장점이 있다.


전선의 택시라는 별명이 탄생한 베트남 전쟁 당시의 모습
전선의 택시라는 별명이 탄생한 베트남 전쟁 당시의 모습

다양하게 진화하다


M113은 양산과 더불어 기존 M59를 대체하며 미군에 급속히 보급되었다. 1962년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면서 탄생하자마자 실전에서도 활약을 펼쳤는데, 말 그대로 APC의 역할에 충실하였다. 베트남 전쟁은 전선의 구분이 모호하여 이동 중에 매복한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적들은 대개 소화기로 무장하였기 때문에 M113은 그야말로 보병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위험지대를 통과하는데 적격이었다.


M113은 다양한 개량과 각종 장비 탑재로 변종이 상당히 많다.
M113은 다양한 개량과 각종 장비 탑재로 변종이 상당히 많다.

이 때문에 M113은 전선의 택시(Battle Taxi)라고도 불렸고, 보병들을 전투 지역까지 신속히 옮겨 싸움을 벌이고 곧바로 철수하는데 이용하였던 UH-1 헬기과 더불어 월남전을 상징하는 대표적 무기가 되었다. 원래 M113은 보병의 이동수단이었으므로 보병들은 하차하여 전투를 벌여야 했다. 그러나 단독으로도 적에게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음이 입증되면서 M113은 다양한 전투 수단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M113은 실전 결과를 바탕으로 꾸준히 개량형이 나왔고 이와 더불어 다양한 변형 장비들의 플랫폼으로 사용되었다. 박격포를 탑재한 M106, M125, 화염방사기를 탑재한 M132, 대공 무기를 탑재한 M163, 대전차무기를 탑재한 M901은 물론 지휘차량인 M577, 구난용 M579, 탄약 수송용 M546, 수송 및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M548등이 바로 M113을 바탕으로 제작된 장비들이다.


국군의 날 행사에 등장한 M577 지휘차량 <출처 (cc) Baek, Jong-sik />
국군의 날 행사에 등장한 M577 지휘차량 <출처 (cc) Baek, Jong-sik>

베스트셀러 장갑차


현재도 대량 사용하고 있을 만큼 오랫동안 미국의 주력 APC역할을 담당하였고, 다양한 장비들의 베이스로 사용되다 보니 M113은 무려 8만대 이상이 생산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탄생하여 미군의 MBT로 활약한 M60 전차가 15,000대 가량 생산되었고, 2차대전 당시 미군의 주력이었던 M4 전차가 약 5만대 정도 생산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기갑장비로는 보기 드문 어마어마한 생산량이라 할 수 있다.


M113은 50여 개국에 공급되었는데, 2,000대 이상을 도입한 나라만도 터키, 그리스, 이집트, 이탈리아 등이고 6,000여대를 사용 중인 이스라엘은 현재 최대 운용국이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쟁 참전 대가로 1965년 44대가 최초 도입된 것을 시작으로 모두 400여대의 M113을 도입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기계화사단과 기갑여단을 운용할 수 있었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 국산 K200 장갑차의 양산과 함께 퇴역하였다.


이라크 전쟁 당시 대전차무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철망을 덧댄 모습
이라크 전쟁 당시 대전차무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철망을 덧댄 모습

어느덧 물러나야 할 시간


비록 M113은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채택한 알루미늄 장갑은 생각보다 쉽게 뚫리곤 했는데, 특히 휴대용 대전차 무기의 발달은 M113의 생존에 치명적이었다. 더불어 소련의 BMP처럼 장갑차도 보병이 탑승하여 전투를 벌일 수 있는 IFV(보병전투차량)가 장갑차의 대세가 되면서 어느덧 화력과 장갑이 약한 M113은 구시대의 장비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M2, M3 브래들리(Bradley)가 미군의 주력 장갑차가 되면서 M113의 비중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지난 이라크 전쟁 당시의 활약에서도 알 수 있듯이 M113은 현재 미군이 보유 기갑차량 중 여전히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어 계획대로 2018년에 전량 퇴역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말 그대로 전장의 택시 역할을 담당하며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M113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제원
중량 12.3톤 / 전장 4.86m / 전폭 2.68m / 전고 2.5 m / 승무원 2명 +보병 11명 탑승 / 12.7mm 중기관총 1정 / 항속거리 480km / 최대속도 67km/h(육상) 67km/h(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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