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해 알래스카 영공을 통과하는 소련 공군의 MiG-29
1989년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해 알래스카 영공을 통과하는 소련 공군의 MiG-29

제2차대전 당시에 YAK같은 준수한 전투기를 자체 생산하여 독일과 싸워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냉전 초기에 서방측은 소련의 항공기, 특히 전투기 제작 능력을 은연 중 폄하하고 있었다. 그러한 와중인 한국전쟁 당시에 홀연히 등장한 MiG-15는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전쟁 초기에 제공권을 장악한 유엔군은 지금까지 전선에 투입한 어떠한 전투기로도 상대하기 어려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상대의 등장에 당혹해 하였다.


미 공군의 F-16C와 비행 중인 폴란드 공군의 MiG-29A. 비록 두 기종간의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지만 라이벌이라 부를만 하다.
미 공군의 F-16C와 비행 중인 폴란드 공군의 MiG-29A. 비록 두 기종간의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지만 라이벌이라 부를만 하다.

치열했던 냉전시대 미국-소련 전투기 경쟁


사태의 심각성에 놀란 미국은 이제 막 배치 중이었던 최신예 전투기인 F-86을 조기 등판시켰는데, F-86이 배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와 한반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MiG-15가 처음 등장한지 불과 한 달 후인 12월 13일이었다. 이후 F-86과 MiG-15는 막상막하의 성능을 자랑하며 진정한 제트 시대를 개막한 라이벌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소련이 만든 일련의 전투기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주의 대상이 되었다.


초음속 시대를 개시한 F-100과 MiG-19처럼 이후 소련은 비슷한 시기에 대등한 성능의 전투기를 속속 등장시켰다. 월남전쟁과 중동전쟁에서 소련제 전투기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서방측, 특히 미국은 소련제를 압도할 새로운 전투기의 개발에 절치부심하였다. 하지만 정작 소련도 미국제 전투기에 맞설 수 있는 신예기 제작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처지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쫓아가기 급급하였던 형편이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이 20세기 말까지 주력으로 사용할 ‘차세대 전투기 계획(F-X)’을 수립하고 새로운 전투기 제작에 나서자 소련의 초조함은 더해 갔다. 각종 정보를 취합한 결과 미국이 대형 제공전투기와 경량의 보조전투기의 이원 체계로 나갈 것임을 알게 되었고 소련도 이에 대응하여 전투기 개발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서방측의 베스트셀러인 F-16에 맞서는 걸작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MiG-29 펄크럼(Fulcrum)이다.


러시아 공군 Swifts 시범 비행대의 MiG-29UB <출처 (cc) Dmitry A. Mottl />
러시아 공군 Swifts 시범 비행대의 MiG-29UB <출처 (cc) Dmitry A. Mottl>

요구와 현실


결과적으로 제공전투기인 F-15에 맞서는 Su-27 그리고 다목적 경량전투기인 F-16에 필적하는 MiG-29로 자연스럽게 구도가 정리되었지만, 사실 소련이 처음부터 그렇게 대응하려 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LWF(경전투기) 계획은 F-15의 엄청난 도입 가격에 놀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지만, 소련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하여 이원화의 길을 밟게 되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처음부터 다층적인 라이벌 체계가 굳어져 버렸다.


소련 군부가 처음에 요구한 차세대 전투기의 성능은 속도가 마하 2이상, 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하며, 근접전은 물론 BVR(가시권 밖) 전투에서도 우세를 달성할 수 있는 기동력과 장거리 작전 능력 그리고 강력한 무장이었다. 이를 ‘당대에 가장 좋은 전투기’라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 문제는 정작 이를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사실 전투기 설계자들이 이러한 목표를 이루려 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초 TsAGi(중앙 유체 역학 연구소)에서 개념 연구에 들어갔는데 하나의 기체로 요구 조건을 모두 갖추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결국 기동력이 좋은 소형 전투기와 장거리 작전이 가능한 대형 전투기로 나누어 개발이 이루어졌다. 1971년 수립된 LPFI(경량 전선 전투기) 계획에 따른 경전투기 개발은 미그 설계국이 담당하였다. 이때 대형 전투기는 수호이 설계국이 담당하였는데, 그렇게 탄생한 또 다른 걸작이 Su-27이다.


이들은 TsAGi의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되어서 크기만 다를 뿐 외형이 상당히 유사하다. 역설적이지만 MiG-29는 기존 소련제 전투기와 차별되는, 한마디로 소련제답지 않은 전투기였다. 기존 전투기들은 지상관제에 의존하여 요격, 공격처럼 단일 전술 능력만 가지고 있던 반면, MiG-29는 서방 전투기처럼 강력한 장비를 탑재하여 독자적으로 다목적 임무에 투입할 수 있도록 제작 된 최초의 소련제 전투기였다.


1986년 핀란드를 방문하여 그 모습을 최초로 외부에 노출하였을 당시
1986년 핀란드를 방문하여 그 모습을 최초로 외부에 노출하였을 당시

개발 그리고 등장


MiG-29는 구형인 MiG-21, Su-15는 물론 야심만만하게 도입하였지만 운용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MiG-23, Su-17의 대체가 우선 목적이었다. 근접전에서 뛰어난 기동력을 보여준 기존 소련제 전투기의 장점을 더욱 강화하면서, 이륙하여 목표물까지 고속으로 다가가 신속히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 향상에 신경을 섰다. 이는 내습한 적국의 폭격기를 조속히 차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었다.


소련 전투기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가 워낙 국토가 넓다 보니 지상의 악조건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는 점인데, MiG-29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이륙 시 외부에서 이물질의 엔진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차단판으로 공기 흡입구을 막고 보조 흡입구를 통해 공기를 엔진에 공급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활주로가 파괴된 진흙 밭에서도 이륙이 가능하다.


강력한 2대의 크리모프(Klimov) RD-33 터보 팬 엔진과 탄소 섬유의 일종인 허니컴으로 제작된 수직 미익처럼 기체에 신소재를 대폭 적용하여 추력 대 중량비가 좋다. 속도를 중시하는 소련의 사상을 이어받아 최대 마하 2.3까지 비행이 가능하여 서방 전투기 보다 앞선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존 소련 전투기보다 향상된 기능은 10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추적하여 상황에 맞게 공격할 수 있는 레이더와 컴퓨터가 연동 된 사통 장치다.


초도 비행은 1977년 10월에 실시되었고, 이후 지속적인 개량 끝에 1982년부터 양산이 시작되었다. 서방측은 개발 직후부터 MiG-29의 존재를 포착하고 ‘펄크럼’이라는 코드명을 부여하여 감시하고 있었다. 1986년 7월, 소련제 전투기의 주요 사용국 중 하나인 핀란드에 시범 비행대가 방문하여 처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냉전 말기인 1988년 영국 판보로(Farnborough) 에어쇼에 참가하면서 정체를 완전히 공개하였다.


(좌)동독 공군의 MiG-29를 통일 후 독일 공군이 운용하게 되면서 그 성능이 서방측에 완전히 밝혀졌다. 이후 계속하여 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이들은 폴란드에 판매되었다.<br />
(우)R-60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이륙 중인 세르비아 공군의 MiG-29. 지난 유고 내전 당시에 F-15C와 교전을 벌였지만 일방적으로 격추 당하였다. <출처 (cc) Krasimir Grozev>
(좌)동독 공군의 MiG-29를 통일 후 독일 공군이 운용하게 되면서 그 성능이 서방측에 완전히 밝혀졌다. 이후 계속하여 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이들은 폴란드에 판매되었다.
(우)R-60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이륙 중인 세르비아 공군의 MiG-29. 지난 유고 내전 당시에 F-15C와 교전을 벌였지만 일방적으로 격추 당하였다. <출처 (cc) Krasimir Grozev>

밝혀진 성능


하지만 MiG-15, MiG-25의 등장 당시 같은 충격은 없었다. 사실 소련 국내 배치와 비슷한 시기인 1985년에 인도를 시작으로 친소 국가에 공급하였을 만큼 소련에게 MiG-29가 최고의 비밀 무기는 아니었다. 더불어 이미 서방은 F-16 같은 든든한 존재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 두려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특히 1990년에 있었던 독일 통일은 MiG-29에 대해 샅샅이 알게 된 기회였다.


NATO는 동독 공군이 보유하였던 MiG-29의 성능을 세밀히 평가하였는데, 알려진 바와 같이 근접전에서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독일은 2003년 더 이상 운용을 포기하고 저렴한 가격에 폴란드 공군에게 판매해 버렸을 만큼 항공 전력으로 계속 보유하고 있기에는 여러 문제점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이후에 여러 차례 벌어진 MiG-29의 실전 결과는 성능에 많은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1991년 걸프전에서 5기의 이라크 MiG-29가 격추되었고, 1999년 유고내전 당시에 2기의 세르비아 MiG-29가 일방적으로 격추당하였다. 물론 이들 사례만으로 MiG-29의 능력을 단정 짓기는 곤란하지만 현대 공중전에서 기동력을 앞세워 근접전을 벌일 가능성이 많지 않아 MiG-29의 장점을 발휘할 일은 생각만큼 흔하지 않다. 사실 근접전 능력 또한 압도적인 우세를 장담할 수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니다.


(좌)항공모함 탑재용으로 인도 해군에 공급 예정인 MiG-26K. <출처 (cc) Oleg Belyakov /><br />
(우)MiG-35는 4.5세대로 평가 받는 최신예 MiG-29 시리즈이지만 아직 대외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아 양산이 되지 않고 있다. <출처 (cc) Dmitriy Pichugin>
(좌)항공모함 탑재용으로 인도 해군에 공급 예정인 MiG-26K. <출처 (cc) Oleg Belyakov>
(우)MiG-35는 4.5세대로 평가 받는 최신예 MiG-29 시리즈이지만 아직 대외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아 양산이 되지 않고 있다. <출처 (cc) Dmitriy Pichugin>

궁금해지는 앞날


소련 및 러시아에 공급된 MiG-29는 1992년도에 생산이 완료되었지만 대외 수출용은 현재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이처럼 30년이 넘게 생산이 이루어지다 보니 MiG-29는 다양한 파생형을 가진 전투기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MiG-29M은 동시 교전 능력이 강화된 레이더를 탑재하여 공대공, 공대지 작전 능력을 향상시켰고 더불어 항속 거리와 추력도 늘어나 진정한 다목적 전투기로 평가 받는다.


특히 2007년에 초도 비행에 성공한 개량형 MiG-29M은 MiG-35이라는 별개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MiG-35는 주익을 대형화하고 카나드 및 추력편향노즐엔진 그리고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를 장착하여 4.5세대 전투기로 구분될 정도로 뛰어난 전투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더 이상 MiG-29 시리즈의 도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MAPO(구 미그 설계국)는 대외 판매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진화는 라이벌인 F-16의 꾸준한 발전 과정과 상당히 유사하다. 공교롭게도 MiG-29와 F-16은 더 이상 개발국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되지는 않는다. 원래부터 보조 경량전투기로써 개발되어서 그런 것인데, 그렇다 보니 정작 해당 시리즈의 최고 성능 개량형은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전투기를 도입하고자 하는 나라에 수출용으로 제작되거나 개발되고 있는 형편이다. 변신을 거듭한 MiG-29의 앞날이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제원
전장 17.37m / 전폭 11.4m / 전고 4.73m / 최대이륙중량 20,000kg / 최고속도 마하 2.25 / 항속거리 1,430km / 작전고도 18,013m / 무장 GSh-30-1 기관포 1문, 7개 하드포인트에 3,500kg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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